▲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긴 시간 유물을 만지다 보면 그 속에서 세상을 사는 이치와 만나는 순간이 있다. 특히 요즘은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이가 늘어가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함께 하는 것에 서툰 이들이 많아지는 듯하다. 혼자서는 온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함께 하면서 완성된 결과를 얻는다는 것. 과거의 유물들 중에서도 혼자서는 그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있다.

갈판과 갈돌. 신석기시대부터 도토리나 견과류를 먹기 좋게 하기 위해 갈아서 가루를 만들고 곡식을 찧는데 쓰였던 도구이다. 갈돌은 석봉이라고도 불리는데 손에 쥐고 갈판 위를 움직이는 길쭉한 모양의 돌이다. 갈돌 위에 닿는 부분은 납작하고 편평하게 닳은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갈판은 넓적한 대석으로 가운데 부분이 오목하게 파이거나 납작하게 얇아진 것도 있다. 신석기시대에 주로 많이 쓰이고 청동기시대까지도 사용되다가 차츰 그 출토예가 줄어든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자리에서 흔하게 출토되는 유물 중의 하나로 아주 많이 쓰였으되 그리 주목 받지 못하는 일상의 흔적들인 것이다.

집자리 조사를 할 때면 자주 등장하는 유물이라 그런지 연구자들 조차도 그리 큰 감동을 받지 않는 유물이다. 그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거니,라고 느끼기 일쑤다. 그런데 필자는 매번 갈판과 갈돌을 볼 때마다 그 조화로움이 참 감탄스럽다. 이를 사용하였던 사람들의 땀이 베인 듯 남아있는 사용 흔적들. 갈돌과 갈판이 만나는 접지면은 누가 인위적으로 그리 맞추려고 해도 힘들만큼 아귀가 참으로 딱 맞곤 하는 것이다. 보드랍다 못해 미끄러질 듯한 사용면은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고 둘이 짝을 이루어 만들어낸 생산의 결과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 갈판과 갈돌 (울산매곡동Ⅳ지구12호, 울주교동리 출토)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유물 하나에서 너무 깊은 상념을 찾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혼자서는 안 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기와집을 지을 때 지붕에 수키와와 암기와가 조화롭게 엮이지 않으면 지붕은 금세 비가 새고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수키와와 암기와의 엮음은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를 넘어 온전한 기능을 만드는 환상적인 조합의 산물인 것이다.

각각의 개체로서는 완전치 못한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만나서 완성을 이루는 세상. 사람이 사는 이치도 이러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나 아닌 누군가와 상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무엇과의 조화를 통해 낳게 되는 제3의 에너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수천 년을 남아 우리에게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이런 유물 속에 살아가는 오늘이 필자는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