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부족 예타통과 실패...불합리한 설문조사에 발목

경제성 부족 예타통과 실패
불합리한 설문조사에 발목
“산업수도 자긍심 상처”
울산시, 강한 유감 표명

박근혜 전 대통령 공약사업 1호인 국립산업기술박물관(국립산박) 건립사업이 결국 좌초됐다. 정부의 불합리한 예비타당성 조사방식에 울산의 숙원 사업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본보 8월1일자 1면 보도)가 현실화된 것이다.

애초 1조2000억원에서 1865억원 규모로 쪼그러든 것도 모자라 끝내 백지화로 결론나자, 울산시는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이끈 산업수도 울산시민의 자긍심에 상처를 입혔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경제성 부족 이유로 탈락

울산시는 국립산박 건립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17일 밝혔다. KDI는 “경제성 부족으로 국립산박 사업이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울산시에 공식 통보했다.

이 사업은 사업추진 의지와 준비 정도 등 정책적 분석은 높게 평가됐으나, 평가항목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성 분석에서 비용편익비율(B/C)이 0.16으로 나타났다. 비용편익비율이 1보다 낮으면 사업추진이 불가능하다.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은 사업비 1865억원을 투입해 남구 신정동 울산대공원내 부지 10만㎡, 건물전체면적 2만8800㎡ 규모로 건립하는 사업으로 정부의 예타를 통과해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정부의 예타는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일 때 이뤄진다.

이번 타당성조사에서는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도 필요성이 낮게 평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그동안 2차례에 걸친 사업규모 축소 등 경제적 타당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결국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하자 유감을 표명하며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울산시 관계자는 “전 대통령의 공약사업이었음에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단순히 경제성 논리로 무산된 것은 행정의 일관성 및 신뢰성을 참작할 때 수용이 곤란하다”며 “사회적·경제적 여건이 성숙하면 당초 취지를 살려 재추진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비합리적 설문조사 희생양

울산시민의 숙원사업이 좌초되면서 지역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특히 국립산박을 무산시킨 ‘도시의 인구규모’에 사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비민주적 불합리한 정부의 예타 방식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KDI는 이번 예타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설문조사 방식을 도입했는데 예를 들면 전국의 1000가구를 무작위로 뽑아 ‘울산에 박물관을 건립하는데 드는 비용을 세금으로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1000가구 중 전국 인구의 22.9%를 차지하는 서울에 229가구가, 경기도 24.3%(243가구)가 각각 배정됐다. 전국인구의 1.9%인 울산에는 고작 19가구만 배정됐다.

수도권 주민에게 “울산에 박물관을 짓기 위해 앞으로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 지는 명약관화하다. 경제성 수치가 터무니없이 낮게 나온 이유다.

이같은 문제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 확인된다. 1000가구 중 693가구가 ‘지불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평균 지불의사액도 569.07원에 불과했다. 지불의사액에 우리나라의 전 가구수를 곱하면 공공재 사회적 비용이 나온다. 국립산박은 598억원이 도출됐다.

건립비용(1865억원)에 운영비까지 포함해 총 2521억원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크게 부족한 수치로 B/C값이 0.16으로 나온 이유다. 국립산박이 불합리한 예타의 대표적인 ‘희생양 사례’로 남기되면서 예타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목소리가 비수도권 지자체를 중심으로 비등해지고 있다.

최창환기자 cchoi@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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