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타이완 고궁박물원

▲ 타이완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원은 69만7490점의 소장품을 갖고있다. 과거유물을 보여주는 ‘박물관’이지만, 동시에 세계 최고의 중국미술 보고이기에 ‘미술관’의 범주에 넣어도 좋을 것이다. 사진은 청 왕조의 소장품 채색 법랑 자기들.

세계 4대 박물관중 한곳으로
송·원·명·청의 궁정유물 계승
1925년 베이징서 첫 개관후
대만으로 이송, 1956년 재개관

소장품 규모 69만점 이상
30년간 매일같이 방문해도
다 보지 못할만큼 방대한 규모

비취옥 깎아 만든 ‘취옥백채’
강희·옹정·건륭 세 황제의 자기
예술적 가치 지닌 청동기 유물 등
5000년 중국미술의 진수 한곳에

한국사람들이 자주 찾는 해외여행지, 타이완(臺灣) 타이페이(臺北)에 국립고궁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이 있다. 세계4대 박물관 중 한 곳이다. 박물원은 ‘송, 원, 명, 청 네 왕조의 궁정 유물을 계승한다’고 설명한다. 복잡한 중국현대사의 과정을 숨김없이 알리면서도 박물원의 정통성을 철저하게 타이완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1925년 ‘천하는 모든 이의 것’이라는 취지에서 베이징 1차 박물원이 개관했다. 1948~1953년 4년 여에 걸쳐 중국사 최고의 명품들이 타이완으로 이송됐고, 1956년부터 대외관람을 다시 시작됐다.

고궁박물원이 직접 밝힌 소장품 규모는 2018년 2월 현재 총 69만7490점에 이른다. 회화(6500여점), 청동기(6200여점), 도자기(2만5500여점), 옥기(1만4300여점), 칠기(760여점), 칠보자기(법랑·2500여점), 소형조각(660여점), 문구(2300여점), 탁본(890여점), 화폐(6900여점), 서예(3700여점), 법첩(490여점), 자수(300여점), 서화부채(1880여점), 희귀도서(21만2000여점), 섬유(1500여점) 등이다. 청대의 문서, 만주 및 몽고와 티베트 언어의 문헌, 불교 악기, 복식, 비연호(코담배병)를 포함한 기타 항목은 41만1000여점에 달한다. 고궁박물원은 이들 소장품을 연중 수차례 교체하며 보여준다. 30년을 매일같이 방문해도 다 보지 못할만큼 방대한 규모다.

이 공간은 지나간 과거의 유물을 보여주는 ‘박물관’이지만, 동시에 세계 최고의 예술품이자 중국미술의 보고라는 점에서 ‘미술관’의 범주에 넣어도 좋을 것이다.

고궁박물원은 10년 전 한번, 그리고 지난해 또 한 번, 두번을 다녀왔다. 아직도 얼마나 더 다녀와야 그 많은 유물을 섭렵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된다. 단편적인 지식을 모아 그 곳에서 보고 들은 정보를 짜맞춰 소개한다. 아무쪼록 미처 다루지못한 수장고 속 중국미술품을 또다시 소개할 날을 기다리면서.

 

◇옥(玉)에 깃든 다섯가지 덕

중국인의 옥(玉)사랑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진시황은 무려 열다섯개의 고을을 내주고 조왕이 갖고있던 작은 옥을 가져왔다. 금값은 정해져 있지만 옥에는 정해진 값이 없다는 중국 말도 있다. 묘한 빛깔의 반투명한 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옥을 두고 중국사람들이 왜 그렇게 감탄할 수밖에 없는지, 고궁박물원이 그 해답을 보여줬다.

비취옥으로 만든 배추 모양의 옥 ‘취옥백채’(翠玉白寀) 앞에는 늘 사람들이 붐빈다. 옥돌의 뿌리에 있는 백색과 비취옥의 녹색을 이용해 배추 모양 그대로 깎아냈다. 배추의 흰 줄기와 푸른 잎사귀가 생생하다. 더군다나 녹색 이파리 깊은 곳에 두 날개를 떨며 소리내는 여치 한 마리를 숨겨놨다. 그 솜씨가 교묘하기 짝이 없다. 하늘이 내린 솜씨로 사람의 마음을 훔쳐가기에 ‘교작옥’(교묘함으로 옥을 만든다)이라는 또다른 이름이 붙었다.

고궁박물원에는 이같은 옥 작품이 여럿 있다. 교묘한 장인의 솜씨 앞에서 넋을 잃고만다. 붉은색 마노 옥은 용과 복숭아로 탄생했다.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꽃으로 구성되는 세한 삼우(三友)를 한 덩어리 옥으로 빚어 내 항아리형 주전자로 만든 것도 있다. 뚜껑에 둥지를 튼 새 한마리, 몸체를 감싸는 꽃과 구름이 초록과 백색의 옥 예술로 환생했다. 옥 장인은 필시 예술가의 눈으로 재료를 바라보고 구상을 가다듬은 다음에 열과 성의를 다해 그 작품을 깎았을 것이다.

옥에 대해 중국인들이 매우 특별한 정감을 지니는데는 이유가 있다. 다섯가지 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끄러운 윤기는 따뜻함 품성을 의미하는 사랑의 덕(仁)이다. 투명한 빛이 안에서 밖으로 나와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 이는 의로움의 덕(義)이다. 소리가 맑고 높아 멀리까지 전해지니 이는 지혜로움의 덕(智)이다. 구부러지거나 꺾이지 않으니 용기의 덕(勇)이요, 날이 날카롭지만 남을 해치치 않으니 헤아릴 줄 아는 덕(潔)이라는 것이다.

◇도자예술의 맥을 짚다

자기(瓷器)의 왕국, 중국 수천년의 기술은 마지막 왕조 청대(淸代)로 고스란히 집적됐다. 이 시기 자기 제작은 가히 최고봉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옛 것을 모방하는 것 뿐 아니라 서양의 법랑(칠보) 기법을 중국식으로 응용 해 자기 표면에 새로운 색채를 입혔다. 강희·옹정·건륭 세 황제의 시기(1662~1796)에 전성기를 이뤘다.

이 시대 만들어진 채색법랑자기는 정교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주전자와 찻잔, 접시는 기본이다. 향료를 담는 작디 작은 밀폐 용기에서는 그 진가가 한층 더 빛을 발한다.

고궁박물원은 이같은 청대 채색 법랑 자기의 집합소라 할 수 있다. 400점이 넘는 세 황제의 황실 용품이 고궁박물원의 수장고에 들어있고 그 중 일부를 번갈아 가면서 소개된다.

◇예술이 된 유물, 청동기

▲ 홍영진 기자 문화부장

청동기 유물에서 예술적 미학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특정 시기에 어느 지역에서 출토됐느니, 사실적 정보와 유물사적 가치만을 배우고 익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궁박물원의 청동기관에서 그 같은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중국의 청동기는 전성기인 은주시대부터 과학과 예술이 결합한 미술품이었다. 표면의 무늬와 한자의 새김 등은 미술관의 현대미술 못지않은 감상 포인트를 제공했다. ‘부서진 청동과 녹슨 철’이라는 울타리를 한발 넘어서면 보인다.

청동기 안에는 역사만 담긴 게 아니라 그 시대의 오묘함과 풍부한 아름다움이 함께 숨을 쉬고 있다. 글·사진=홍영진기자·참고자료=중국미술사(이림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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