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공포 새로운 시도…긴장감 최대한 유지할 수 있게 신경써”

“’기담‘ 같은 영화가 다시 나온다면 마니아 관객은 좋아하겠죠. 하지만 한국 호러가 침체된 상황이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미학적 시도가 담긴 공포영화와 유튜브 세대가 좋아할 만한 공포영화 중 어느 쪽이 파급력이 더 셀까요. 관객의 시선을 다시 끌 계기를 만드는 편이 좋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정범식 감독은 한국 공포영화의 장인으로 꼽힌다. ‘기담’(2007)과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등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계보를 이어왔다. 그 중에서도 ‘기담’은 유려한 영상미에 슬픔의 정서까지 담아내 ‘무섭고도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28일 개봉하는 ‘곤지암’은 ‘기담’과 정반대에 있다.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소녀의 구구절절한 사연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오싹한 목탁 소리도 없다. 오로지 공포를 체험하러 곤지암 정신병원에 잠입한 젊은이들의 본능적 반응만 담았다. 공간음을 제외하면 아무런 음향효과도 쓰지 않았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이어서 영상미가 끼어들 틈도 없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10년 전엔 공포영화를 ’관람‘했다면 이제는 즐기는 방식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공포영화 주관객층인 10∼20대가 기승전결의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공포심 자체의 경험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곤지암’은 유튜브에 익숙한 젊은층에 최적화된 공포영화다. 공포체험단이 괴담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는 설정이다. 정 감독은 “사연이나 뒷얘기를 제거하는 서사의 형식적 시도를 해봤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제대로 된 페이크 다큐가 나온 적이 없지만, 마니아들은 이미 익숙하다. “기존 페이크 다큐를 답습해서는 의미가 없죠. 다큐의 핵심이 생생함이라면 그 다음 단계는 체험입니다. 인물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는 듯한 체험이 공포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효과를 위해 배우들에게 연기는 물론 촬영까지 시켰다. 병원 건물에 들어간 체험단원들은 각자 3대씩 카메라를 들거나 몸에 장착했다. 배우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영화의 대부분을 채웠다. 

정 감독은 “촬영에 대한 훈련이 된 배우들도 아니어서 처음엔 무모한 도전이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촬영도 연기의 일부로 여기고 해줬고, 감정이 담긴 영상이 나왔다”고 만족해했다.

정 감독은 틀이 정해져 있다는 선입견과 달리, 오히려 여러 가지 실험이 가능한 게 창작자로서 공포영화의 매력이라고 했다. “스크린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관객은 응시하죠. 무서운 부분만 제대로 만들면, 다른 부분에선 자유롭게 시험해볼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더라고요.” ‘곤지암’에는 한국현대사와 관련한 몇 가지 이스터 에그(재미로 숨겨놓은 장치)를 넣었다.

“긴장과 이완의 박자를 보통 영화들과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마니아들은 관습을 꿰뚫고 있어서 대충 예상하거든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로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지만 긴장감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게 신경썼어요. 체험공포라는 새로운 시도가 관객에게 신선하고 즐겁게 다가갔으면 합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뻔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보고 판단해주세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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