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왕 울산광역시평생교육진흥원 부원장

얼마 전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아주 소박한 개소식이 있었다. 주민들이 가꾸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학교가 개소하는 자리였다. 개막식도 조촐하게 진행되었고 현판도 학교의 크기만큼 작았다. 구청장을 비롯한 내빈이 초대되었지만 주인공은 당연 지역주민이었다. 마을학교 사업은 지역 내 유휴공간을 학습공간으로 활용하는 울산시의 평생교육 사업이다.

마을학교 사업은 주민주도형 사업으로 주민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행정이 지원하는 방식이다. 울산시의 지역 평생교육 활성화를 위해 2015년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5개 구·군에 총 17개의 마을학교가 개소되었다. 마을학교의 프로그램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성인 학습프로그램에서 아동의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울산시교육청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교육 혁신 차원에서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계하는 마을교육공동체 개념 속에 마을학교가 포함돼 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우고 마을이 아이들의 배움터가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시교육청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제로 현실화되기엔 넘어야 할 벽이 많아 보인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와 교육자치가 명확히 구분돼 있고 마을학교는 학교행정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지방행정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 교육공동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시를 비롯한 구·군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동교육의 영역이 교육자치가 아닌 지방자치의 몫인지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평생교육이 학교 밖의 교육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아동교육을 지방자치의 영역으로 당연시 생각하기도 한다. 학교 밖의 아동교육이 학교교육의 영역인지 평생교육의 영역인지에 대한 논란을 넘어 교육자치와 지방자치가 함께 힘을 모아 지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방과후 아동을 보살피는 일, 높은 사교육비를 줄이는 일, 전인적 발달을 도와주는 일은 지역주민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동교육 영역을 학교가 모두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필자는 과거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사교육 없는 학교’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사교육 없는 학교’ 사업은 공교육 만족도를 높여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고자 했던 정부의 핵심적 교육 정책으로 추진된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 선정된 학교에 연간 평균 1억원을 지원했다. 첫해의 전체 사업 예산은 600억원이 넘었고 이듬해는 800억원이 넘었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선정된 학교의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로 인해 교장 선생님의 왕성한 의욕을 원망하기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부족한 것이 그 사업이 크게 실효를 거두지 못한 원인이기도 했지만 학교만으로는 학교교육의 혁신이나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사업은 학생을 보살피고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돕는 것은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지방자치와 교육자치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시·도에도 마을학교가 있다. 다른 시·도의 마을 학교는 모두 광역 시·도의 지원 없이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한다. 울산의 마을학교는 울산시가 재능 있는 주민들을 지식강사로 발굴하여 참여하도록 하고 마을학교 운영을 담당할 매니저를 교육,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울산형 마을학교 사업은 광역자치단체가 지원하고 기초자치단체가 참여하는 전국의 유일한 사업이다.

울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학교 사업은 광역자치와 기초자치가 협력하는 모범적인 사업으로 다른 시·도에 소개되기도 했다. 울산의 마을학교는 울산시와 교육청이 함께 협력하여 학교교육을 보완하고 아동을 보살피기 위한 사업으로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

울산형 마을학교가 광역자치와 기초자치의 협력을 넘어 교육자치가 함께 하는 사업으로 발전한다면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의 가장 훌륭한 협력 모델로 울산의 또 하나의 자랑이 될 것이다.

신기왕 울산광역시평생교육진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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