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페시피 - 1. ‘모른다 박수’와 ‘안다 박수’

▲ 조희창 음악평론가

클래식공연 악장 중간에 박수
곡의 흐름 끊어놓는 ‘방해꾼’
성숙한 박수로 여운 즐겨야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음반, TV, 컴퓨터를 통해 재생 음악을 듣거나 직접 연주장에 가서 라이브 연주를 듣는 것이다. 재생음악은 감상시간이 자유롭고, 복제할 수 있으며, 수집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막힌 교통을 뚫고 공연장을 찾아가는 수고를 덜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찾는 것은 왜일까? 이유는 그 시간, 그 공간에서만 가능한 생생한 체험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장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대중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로인해 가끔씩 마음 다칠 수 있다. 가장 빈번한 상처는 휴대폰 때문에 생긴다. 공연 전에 아무리 꺼두라고 안내해도 말을 안 듣는 사람이 있다. 연주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하는 부분에서 들리는 휴대폰 소리는 분명히 테러에 가깝다.

공연장에서 신경 쓰이는 것이 또 있다. 박수 소리다. 무대 위에 선 연주자들은 박수를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찬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들리면 이제까지 땀흘려온 모든 시간이 일순간에 보상받는 듯하다. 그런데 박수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박수를 쳐야할 때와 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클래식 공연에서 박수를 쳐야할 때는 지휘자나 협연자가 입장할 때, 곡이 끝나고 지휘자가 돌아설 때, 연주가 끝난 후 지휘자가 연주자를 일으켜 세워 인사시킬 때 등이다. 이럴 때의 박수는 자기 느낌대로 치면 된다. 문제는 박수치지 않는 것보다 박수 치는 것에서 발생한다.

공연장에서 가끔씩 “악장 중에는 박수를 치지 말아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유는 박수 소리가 곡의 흐름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악장을 가진 곡은 각 악장들의 성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악장마다 박수를 치면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토막 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7악장이나 되는데 모든 악장에 ‘아타카’(attaca) 즉, 끊지 말고 연주하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이런 곡의 중간에 박수를 쳐버리면 베토벤이 무척 슬퍼할 것이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세 악장이 모두 이어져 있는 곡이지만 1악장이 끝날 때면 꼭 박수치는 사람이 있다. 1악장의 종결부가 대단히 화려하고 강렬하게 끝나기 때문에 저절로 손이 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일명 ‘모른다 박수’라고 하는데 대부분 이심전심으로 용서하게 된다. 아마 하늘나라의 멘델스존도 “내가 곡을 너무 잘 써버렸군”하며 웃고 넘어가리라 본다.

박수 때문에 불쾌한 일은 ‘모른다 박수’보다 ‘안다 박수’인 경우가 많다. ‘안다 박수’는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구 박수치는 경우를 말하는데 주로 음악 좀 들었다는 사람이 저지른다. 이 분들은 마치 “나, 이 곡 알거든”하며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잽싸게 박수를 친다. 마치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마자 후다닥 나가는 관객처럼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명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2012년에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지휘한 영상을 보면, 곡이 끝나고 40초가 넘도록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청중도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앉아 곡의 여운을 묵상한다. 이윽고 지휘자가 청중을 향해 몸을 돌리려 할 무렵이 되어서야 천천히 박수소리가 시작된다. 이것이 성숙한 박수 형태고 교양 있는 감상 태도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극장이나 공연장에까지 와서 그렇게 조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박수 친다고 타박할 수는 있지만, 박수 안친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조금 더 천천히, 여유 있는 감상 태도를 가지면 모두가 편할 것이다.

조희창 음악평론가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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