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전문가들의 지혜와 경험을 살려
보람찬 비즈니스 펼치는 동창에게서
은퇴 이후에도 젊게 사는 해법 보는듯

▲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일본 북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시의 시립평생학습센터. 실제로는 노인대상교육센터의 이름은 Chieria(치에리아)이다. Chieria는 지혜(智慧)의 일본어발음인 Chie(치에)와 사람들이 즐겨 모이는 Cafeteria(카페테리아)의 합성어이다.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 지혜롭고, 지혜가 많은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과연 일본사람들의 단어 짓기 재주는 세계최정상급이다. 00무료급식소, 00장애인복지관, 00복합환승센터 등, 곧이곧대로, 발음하기 힘든 명칭 짓는 것에 익숙한 우리보다는 확실히 한수 위다. 각설하고.

얼마 전 나의 고교동기동창 운동모임이 울산에서 있었다. 매년 한번 울산에 거주하는 몇 명의 고교친구들이 호스트가 되어 전국의 동기들을 초청하는 1박2일의 행사이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친구들이 앞다투어 참가하는 인기 있는 행사이다. 벌써 7회째인 이 행사는 지난해까지는 주말에 열렸는데, 올해는 주중으로 날짜를 옮겼다. 대부분 시간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예전엔 장관, 국회의원, 대학총장 등 소위 주요 인사(?)들이 참가하면 가운데 좌석을 배려하곤 했었는데, 이제 누구든 늦게 오면 말석이다.

머리숱이 듬성듬성해지고, 머리에 하얀 눈이 잔뜩 내린 모습을 보니 상호 건재를 확인하는 기쁨과 함께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대화는 자연스레 근황 발표로 이어진다. 하루 종일 TV 리모콘 들고 안방과 거실을 왕래하는 친구도 있고, 바둑 두고, 당구 치고, 등산 가고, 골프 치고의 쳇바퀴를 도는 친구도 있고, 글쓰기, 독서, 불경에 빠진 친구, 여행에 빠진 친구, 종교에 빠진 친구도 있다. 다시 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으로 생활하는 나 같은 경우는 다소 독특한 편이다.

그 중 한 친구의 얘기가 모두의 귀를 잡아끌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인데, 그도 대체로 자유인이다. 하루는 소파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노인은 젊은이보다 지혜롭고, 경험이 많고, 인맥이 넓다는 사실, 경제적 부의 축적보다 삶의 보람에 더욱 목말라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고, 이를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에 도달했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한국의 기업생태계에는 오너십(ownership)은 있어도 파트너십(partnership)은 많이 부족하다는 현실도 작용했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우선 재계, 법조계, 언론계 등에서 은퇴한 베테랑 전문가들을 모아 30명의 튜터그룹을 만들고, 법인을 발족했다. 사무실도, 사원도, 전화도 없는 회사이다. 봉급 나갈 일도 없고, 모든 일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니 운영경비도 거의 안 든다. 그러면 도대체 하는 일은 무엇일까?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하고 싶은데, 아이디어만 있지 어떻게 해야 사업을 일으킬지 모르는 사람이 대상이란다. 인터뷰 후,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필요한 사항을 온라인으로 튜터 모두에게 알리고 관심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 대략 한 창업희망 건당 4~5명의 튜터가 관심 있다는 답신을 보내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적극적으로 창업을 돕는다. 창업운영자금이 필요한 경우에는 파이넨싱회사를 연결해 자금을 조달케 해주고, 창업에 필요한 법적 행정적 절차를 도와주며, 경영에 필요한 인사관리문제도 튜터링하고, 해외의 파트너도 직접 주선하여 연결해주고, 필요한 경우 같이 출장도 가고… 등등. 발군의 전문성과 경륜과 인맥과 지혜로 무장된 베테랑 튜터들의 지원을 받으면 성공가능성은 당연히 수직상승한다. 어쨌든 창업자는 성공해서 좋고, 튜터들은 보람이 있어 좋고 경제발전에 한몫하는 기쁨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위 베테랑 노인 전문가들의 지혜와 경험과 인생가치를 활용한 기발한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한 것이다. 그래도 비즈니스인데 조건이 없을 수 없다. 조건은 두 가지. 그 하나는 회사가 성공하여 상장(上場)하는 경우, 30%의 주식을 제공해야 하고, 그 30%의 70%는 직접 관여한 튜터들 개인에게, 나머지 30%는 법인에 배속된단다. 두 번째는 성공한 창업자 자신도 이 법인에 튜터로서 가입해야 한단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퍼지는지,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희망자가 줄을 잇고 있단다. 얘기를 듣다보니 그 친구 지난해보다 훨씬 젊어진 것 같았다.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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