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 맺어주는 매개체 아비튀스
과거 수동적 재난안전 정책수립 벗어나
시민 토론회등 개최 기술개발 반영계획

▲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도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의 이면에는 북핵문제의 갈등이 항상 결부돼 왔으며, 그 기술적 분야는 다를지언정 필자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핵기술이 정치·사회적 요구에 따라 오용돼 후회했던 아인슈타인을 떠올려본다. 과학의 패러다임에 새 지평을 열었던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어버렸을 것이다”며 후회했다는 사실은 과학이라는 것이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로 엮어져 있으며 과학의 사회적 중립성이 허구임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학기술이 세속과 담을 쌓은 노자의 철학처럼 과학자의 철학안에 사유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하고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일종의 사명까지 짊어져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개인과 사회구조의 상관관계의 매개체로서 ‘아비튀스(habitus)’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본래 태도, 외부적 모양을 뜻하는 것으로 “사회현상은 단순한 경제현상이 아닌 개개인의 아비튀스가 모여 좌우된다”고 부르디외는 주장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개인의 인성과 습관 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끊임 없이 공유하고 학습하면서 개인의 아비튀스는 장(field)의 확장을 이루게 되며 확장된 개인의 아비튀스는 이성의 진보를 이루는 사회적 조건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대가 요구하는 과학자의 아비튀스는 무엇일까? 필자는 현재 재난안전분야의 과학기술 및 정책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국립연구기관의 장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불과 25년전까지만 하더라도 토목공학에서 홍수를 연구하는 공학박사였다. 그러다 국가연구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는 공학적 학문의 틀 안에서만의 연구를 허락하지 않았다. 1990년대 대규모의 홍수가 빈발하면서 사회적 요구에 따라 나의 연구결과가 재해영향평가기준을 수립하는데 이론적 토대로 작용하였고, 정부와 관련 학회에서는 젊은 박사를 초청해서 기조강연을 맡기기도 하였다. 이후 현 연구원의 전신인 국립방재연구소가 개소되면서 초대 창립멤버로 활동, 우리나라 방재연구분야의 기술적·정책적 연구를 수행해 왔다.

여태까지 필자가 이 분야에서 활동한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요구에 의해 학문의 장(field)과 사회적 장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온 것 같다. 연구원 차원에서도 사회과학과의 융합을 통한 재난안전연구와 4차 산업혁명 대비 기술적·사회과학적 연구를 진행했고, 재난원인조사 개념을 도입해 조직화 시키는 등 새로운 장을 개척해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발생하는 재난이슈와 이에 따른 사회적 요구에 더욱 기민하게 반응해 왔던 것이 나와 기관의 아비튀스였다. 비단 이것은 나와 우리기관뿐만이 아닌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아비튀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이슈와 여론을 감당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장(field)을 확장해 왔던 것이 재난안전분야의 아비튀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분야의 연구자로서, 또 중견선배로서 능동적인 장의 확장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도 해본다.

필자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학자로서의 고뇌와 연구는 계속 진행하되, 이제부터 국민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연구와 기술을 발굴하고, 새로운 장으로 확장시켜 이를 나와 우리기관의 아비튀스로 정립하고자 한다. 기존에도 국민과의 소통자리를 통해 관련 연구와 정책개발을 해왔지만 그 기회는 많지 않았다. 재난안전분야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대면 토론회를 개최하고 도출된 시사점을 기술개발, 정책연구, 기관운영 방침 수립에 적극 반영하고자 한다.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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