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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26)]카오스와 코스모스

기사승인 2018.09.13  2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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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④

   
▲ 에머랄드 사원을 품고 있는 방콕 왕궁은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18세기 방콕시대 연 차끄리왕조
왕궁의 하이라이트 에머랄드사원
불상뿐 아니라 건축물 자체가 보석
유럽 어느 왕궁보다 화려함의 극치
왕궁 담장만 넘으면 마법은 풀려
낡고 무절제한 도시는 ‘카오스’
통제되지 않은 도시의 욕망 보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도시상 고민

방콕이 태국의 수도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겨우 1782년의 일이니 조선 후기 정조시대에 해당한다. 아유타야에 수도를 두었던 샴 제국이 버마와의 전쟁에서 패망한 이후 장군 출신이었던 차끄리는 샴 왕조의 후계임을 자처하면서 방콕 시대를 열었다. 그 정통성의 뿌리를 아유타야에 두고 강력한 왕권국가를 지향한 것이다.

새로운 왕조를 창설한 차끄리는 방콕에 수도를 건설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으로 이 도시가 지향하는 바를 선언했다. ‘신의 도시처럼 광활한 수도, 에메랄드 불상이 안치된 곳, 난공불락의 도시. 견고하고 찬연한 아름다움을 지녔네. 아홉 가지 보석으로 완벽한, 더없이 행복한 도시. 신이 강림하시어 머무는 신전과 같은 웅대한 왕궁이 있네. 인드라께서 비슈누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현신해 창조하게 하신 곳’이다. 힌두교 전통이 강했던 크메르의 신권국가를 지향한 것이리라.

그 실체적인 모습은 왕궁(Grand palace)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방콕 왕궁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차끄리 왕조의 상징이다. 절대 왕권이 1932년 입헌군주제로 넘어가기까지 이곳을 국가의 행정적, 종교적 중심으로 삼았다. 왕가의 혈통이 아니었던 차크리는 이름마저 힌두식인 라마 1세로 개명하면서 왕권의 권위를 내세우려 했다. 라마는 비슈누의 7번째 화신으로서 자신을 비슈누의 현신으로 선포한 것이다. 힌두와 불교의 신권국가였던 크메르 제국에서 신격화된 왕의 권위가 부러웠던 것일까.

왕궁의 하이라이트는 에머랄드 사원이다. 원래는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진 사원이라 하여 ‘왓 프라깨우’로 불리었다. 왕궁 안에서 독립된 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이 사원은 왕실의 중요한 불교행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건축된 왕실사원으로, 스님은 기거하지 않는다. 수코타이의 왓 마하탓, 아유타야의 왓 프라 산시펫 등 왕실사원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에머랄드 사원은 불상만이 아니라 건축물 자체가 보석이다. 유럽의 어느 왕궁에 비한다 해도 이처럼 호화스러운 건물은 찾기 어렵다. 회랑으로 위요되어 있는 사원은 아유타야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주요한 전통양식이 모두 구사되었다. 스리랑카 양식의 종모양 불탑 체디(chedi)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태국식 사각형 불탑 몬도프(mondop)에는 불경을 소장했고, 그리고 옥수수 모양을 한 크메르 양식의 탑 프랑(prang)을 지붕 위에 얹은 건물은 역대 왕들의 조소상을 모셨다.

장식의 호화로움은 극에 달한다. 벽과 기둥은 황금 칠이나 유리세공으로 휘황찬란하다. 자개처럼 박은 세라믹 타일, 왕관처럼 금과 은세공을 입힌 지붕 등 형형색색의 재료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보석으로 건축을 꾸몄다기보다, 건축을 보석처럼 세공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것은 전 정권에 아부했던 불교계를 숙정하고, 정통성과 권위를 회복시킨 차크리 왕조의 종교적 위상과 정치적 관계를 과시하는 상징이 아닐까.

중심 구역에 있는 세 개의 주 건물 외에도 사원 안에는 백여 개의 부속건물들이 서있다. 여기에도 인도풍, 중국풍, 인도네시아와 크메르 양식에 이르기까지 소위 아시아 제국의 권위건축 및 조형디자인들이 총망라 되었다. 가히 아시아 ‘권위건축’의 박물관이라 할 것이다. 이것들은 태국의 전통건축과 절묘하게 결합됨으로써 마치 창작품인 것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하지만 왕궁의 담장 밖을 나오는 순간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세상은 변한다. 전통과 격식은 사라지고 정체모를 낡고 험한 건물들이 도시와 거리를 빈틈없이 채운다. 도시생활을 위한 공공 서비스도, 환경수준도 국민소득에 비하면 턱없이 불량하다. 온갖 교통수단이 뒤엉켜 질주하는 도로에서는 매캐한 연기와 소음이 멈추지 않는다. 음습한 고가 밑은 쓰레기장이며, 하천은 하수도 같은 구정물이 흘러가고, 천변에는 피난촌 같은 슬럼이 형성된다. 카오스 같은 도시 속에서 서민들은 눈치와 ‘인민의 대책’으로 살아간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카오산 로드만큼 혼돈의 도시가 사람들의 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있을까? 카오산 로드는 관광객들의 해방구이다. 해만 떨어지면 거리는 아수라장이 된다. 점포들은 하나같이 거리를 침범하여 가로 폭이 좁아질 대로 좁아졌고 그 사이에 포장마차들이 겹겹이 열을 선다, 사람과 점포에 막혀 북새통을 이루는 거리에 술집마다 고막이 터질 듯 한 음악으로 손님을 유혹한다.

카오산 로드가 아니라 ‘카오스 로드’라 해야 적절하다. 돈만 주면 모든 환락을 즐길 수 있다. 술과 여자와 신기한 먹거리와 놀거리, 자기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온갖 쾌락을 돈으로 구매할 수 있다. 자본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카오스는 통제되지 않는 행위의 자유에서 비롯된다. 벌거벗고 춤을 추거나, 악을 쓰며 떼창을 하거나, 술에 취해 거리에 누워도 뭐랄 사람이 없는 해방구. 카오스는 멀쩡한 사람도 일탈을 유혹한다.

타이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했던가? 국가는 자본에게 서민의 삶을 위임한 듯 보인다. 개발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에게 공공성은 사치일 뿐이다. 도시는 욕망의 통제시스템이다. 통제되지 않은 자본은 사익을 따라 움직이며, 카오스를 지향하게 마련이다. 다양하되 조화롭고, 생기 넘치되 질서 있는 도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지속성을 존중하는 도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도시상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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