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울 집값 급등에 마음 착찹하지만
같은집에 살며 당장 생활은 똑같아
집의 교환가치 변화에 울고웃을 뿐

높은 주거비·장거리 통근 감수에도
서울 장점 취하고 싶은건 개인문제
살아가는 목표와 가치 다르기 때문

위험 무릅쓴 부와 권력 쌓기 경쟁
원시시대부터 이어진 과식과 닮아
현대사회에선 비만·당뇨 원인으로

올해 추석 서울에선 모이는 사람마다 집값이 단연 화제였다고 한다. 서울, 특히 강남의 집값이 며칠에 수억씩 올랐다는 보도는 국민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빠듯한 생활비를 아껴 저축하며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길 기대하던 사람들은 허탈하다 못해 자괴감이 든다.

수도권의 시민들은 처한 사정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린다.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속으로 기뻤지만 집 구입을 미루던 세입자들은 후회막급이다. 그렇다고 당장 생활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같은 집에 살면서 집의 교환가치 변화에 울고 웃을 뿐이다. 소수를 제외하면 미래는 더욱 어두워졌다. 더 많이 돈을 벌어야 현재 주거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며 무리해서 도심에 집 사려는 사람이 늘수록 집값 버블은 커지고 시민들의 경제력 격차는 더 벌어진다.

서울 집값 급등을 바라보는 울산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울산 주택가격은 서울과 정 반대로 올해들어 8월말까지 3.96% 하락하였다. 전국에서 낙폭이 가장 크다. 반면 울산의 자가 보유율은 67%로 서울의 48%보다 훨씬 높다.(2017년 주거실태조사)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집값 상승의 행운(?)을 경험한 적이 없다. 양도소득세 걱정이 어떤 건지도 모른다. 경제에 문외한이라 부동산 투자에 대해선 모르지만, 사는 도시에 따라 갑자기 집값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고민하게 된다.

재산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있지만 그렇다고 서울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서울과 울산은 집값의 차이를 떠나서 살아가는 목표, 가치, 방식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일일생활권이고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냐고? 글쎄 그럴까.

우리나라에서 서울은 특별시답게 특별한 도시다. 세련되고 멋있고 유명하고 뛰어난 것은 모두 서울에 몰려있다. 국가 정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방에서도 봐도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은 선망의 대상이다. 오죽하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강남’ 발언이 국민들의 화를 북돋웠을까? 장 실장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내가 강남에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이 말은 강남 집값 상승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최고조인 상태에서 국민들의 염장을 질렀다.

하지만 앞뒤 설명 없이 튀어나온 이 발언을 나는 그의 솔직한 심경으로 받아들인다. 본마음은 모르지만 그의 지친 모습을 보면서 순전히 나의 상상을 덧붙여본다.

‘강남은 부와 성공의 상징이지만 여기 삶은 겉보기와 달리 화려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이제는 국가경제의 중요 결정을 하는 직책에 올랐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해서 질책은 따갑고 마음은 무겁다. 강남 아파트는 편안한 휴식처가 아니라 혼자만 돈 벌었다고 비아냥거리는 뉴스감이 되어버렸다. 강남에 살지 않았으면 이런 억울한 소리는 안 들었을 텐데. 사람들은 강남에 살면 모든 걸 다 이룬 것처럼 여기는가본데 그렇지 않다.’

강남은 경쟁의 최종 목표이자 수단이 되었다. 경쟁은 강남의 학교와 학원에서 시작된다. 경쟁이 적절한 자극을 주고 동기를 부여한다면 좋겠지만 결국은 등수로 귀결된다. 모두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순위를 매기자니 난이도를 한없이 높이고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준이 적용되면 소수의 적응자와 다수의 낙오자로 나뉘지만 진정한 승자는 드물다. 이런 방식의 삶은 학교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이어진다.

부와 권력을 향한 끝없는 경쟁은 과식과 닮았다. 음식이 부족하던 원시시대에는 칼로리 높고 단 음식이 보이면 일단 먹어서 지방으로 비축하는 것이 유리했다. 이 습관은 음식이 풍부해진 현대에도 남아서 비만과 당뇨의 원인이 된다. 마찬가지로 식량 생산이 부족한 옛날에 흉년에도 살아남으려면 부와 권력이 필요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우는 것은 생존에 유리했다. 미래를 위한 부를 쌓기 위해서라면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었다. 지금은 생산량이 늘어나고 생존이 위협 받지 않는데도 경쟁은 끝이 없다. 역사학자이자 생물학자인 다니엘 밀로는 <미래중독자>에서 ‘오직 인간만이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며, 내일을 발명함으로써 삶의 거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하였다.

욕망에 부풀어 바쁘게 경쟁하는 서울에서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기란 어렵다. 기본적으로 비싼 주거비용을 대기 위해 더 많은 시간 일하고, 자주 이사하고, 장거리 통근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기회와 장점을 취하고 싶다면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단지 사는 집이 비싸고 교환 가치가 높다고 해서 그만큼 더 성공했다고 보는 건 무리다.

냉정히 말하면 그건 돈을 못 번 사람의 합리화이자 요즘 말하는 정신승리일 뿐이라고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좀 단순한 설정이지만 이건 어떤가. 전세금과 집값을 벌기 위해 평생을 긴 노동과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여유 없이 살았는데, 그나마 마음 한 구석에서는 꾸준히 오르는 집값이 다행스럽고 뿌듯했다면. 과연 누가 정신승리일까?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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