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증인출석 명예실추에
정운찬 총재 발언 결정타
총재 리더십에 거센 비판

▲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1월 한국프로야구 수장에 오른 정운찬 KBO 총재가 취임 1년도 안 돼 리더십에 치명타를 맞았다.

선동열 야구대표팀 전임감독이 부임 1년4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14일 자진 사임하기로 발표함에 따라 정 총재의 ‘조정 능력’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선 감독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팀 감독을 그만두기로 했다.

선 감독은 입장문에서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낸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 점, 아시안게임 우승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국감 발언, 대한민국 체육인 역사상 최초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에 따른 명예 실추, 전임감독제가 필요 없다던 정 총재의 국감 발언을 사퇴의 주요한 이유로 꼽았다.

사실상 정 총재와 KBO의 능력 부재를 공개로 질타한 것이다.

전임 구본능 KBO 총재가 임명한 선 감독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대표팀 감독 임기를 보장받았다.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 12, 2020년 도쿄올림픽 등 해마다 굵직한 국제대회가 잇따르자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선 감독에게 4년간 팀을 꾸리도록 맡겼다.

만 24세 이하 젊은 선수들이 참가한 APBC에서 대표팀 사령탑으로 데뷔한 선 감독도 지금의 젊은 선수들이 도쿄올림픽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중용하겠다며 성적과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몰이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을 둘러싼 논란으로 ‘국보’의 위상에 큰 흠집이 났다.

선 감독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병역 미필 선수에게 혜택을 줬다는 의혹에도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뽑았다고 소신을 강조했다.

선 감독은 국감 출석 전 기자회견과 국감장에서 병역과 관련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에 두 번이나 고개 숙여 사죄했다.

체육인 최초로 국감장에 선 불명예와 치욕에도 선 감독은 감독직을 계속 지키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정 총재의 실언이 선 감독 사퇴의 결정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비판하더라도 한국 야구의 영웅인 선 감독의 외부 ‘방어막’ 노릇을 해줘야 할 정 총재가 국회 국정감사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두 번이나 ‘사견’을 밝히면서 선 감독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KBO 총재 또는 대표팀 운영 최고 책임자라는 공적인 자격으로 국감장에 출석한 정 총재는 먼저 TV를 보고 선수를 선발하는 게 옳으냐는 손 의원의 질문에 “선 감독의 불찰”이라고 답했다.

정 총재는 한술 더 떠 “이는 마치 경제학자가 현장에 가지 않고 지표만 갖고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이라고 답해 선 감독을 막다른 골목에 몰았다.

선 감독은 전국 5개 구장에서 동시에 열리는 프로야구 경기를 지켜보며 효율적으로 선발하기 위해 한 장소에서 TV로 5경기를 보는 게 낫다고 답했다.

정 총재는 또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국제대회가 잦지 않거나 대표 상비군이 없다면 전임감독은 필요치 않다”며 사실상 전임 감독제에 반대 뜻을 표했다.

도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19년 프리미어 12, 그리고 도쿄올림픽 등 이미 예정된 국제대회 일정을 까맣게 알지 못하고선 도저히 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설령 사견이라도 KBO 총재가 공적인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손 의원은 ‘스타 선수가 명장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며 정 총재에게 선수 시절 무명이었으나 감독으로 성공한 인물을 물었고, 정 총재는 조범현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을 거론하는 등 국감의 핵심과는 무관한 문답으로 현 대표팀 감독인 선동열에게 공개로 면박을 줬다.

선 감독은 입장문에서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자진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습니다”라며 사퇴의 원인이 정 총재에게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또 ‘스타 선수가 명장이 되란 법 없다’라는 지적, 늘 명심하도록 하겠다고 뼈 있는 말도 남겼다.

정 총재와 KBO는 국감에서 한 문제의 발언이 커지자 선 감독과 접촉해 서로 간의 신뢰에 변함없다고 강조했지만, 선 감독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해 큰 낭패를 초래했다.

전임 총재와 집행부가 한 일이라면 거부반응부터 일으키는 정 총재의 포용 능력 부재, 자문위원회 일부 인사의 말만 듣고 현실을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인식 능력, 여실히 드러난 사태 조정 능력 등이 선동열 감독의 사퇴로 한꺼번에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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