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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에세이]팔불출 할미- 이명길

기사승인 2018.12.06  21: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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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박임규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라도 머물면 더 바랄게 없을만큼 충만해진다.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도 아이의 얼굴이 된다. 순수하면 행복하다.

“외손주 키운 공은 없다카더라.”

“가만있으면 자식이 알아서 할 낀데 우짤라꼬?”

두 달 만에 만난 친구들이 돌림노래를 한다. 작년에 친손자를 본 친구조차 거든다. 아들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손자 돌보기를 거부하자 며느리가 퇴직했단다. 돈 벌어 부모 주는 것 아닌지라 도우미를 구하든지 직장을 그만두든지 내버려 두고 내 인생이나 챙기란다. 예순 줄에 꿰진 낡고 헤질 건강을 염려하는 말인 줄 알면서 머릿속에 새근새근 자고 있을 손녀 얼굴이 산들댄다. 엉덩이가 근질거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서자 중병 상태라며 또 일침을 준다.

백세시대에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마땅하다. 자식에게 걱정거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다 맞는 말이다. 거기다가 평소보다 부지런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그런데도 외손녀 돌보기를 자청하여 낭패를 당한다. “누구는 월요일 비행기로 울산에서 서울까지 출근하여 금요일에 퇴근이란다. 어느 사위는 자기 집 앞에 원룸을 얻어주더라네. 그게 제 새끼 잘 보라는 것이지 장모 편한 잠 바래서냐!” 등 오지랖 넓은 소리까지 듣는다.


나는 요즘 손녀 보는 맛을 톡톡히 누린다. 바라만 봐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겨우 두 달 지난 것이 배고프면 도리질로 쩝쩝대고, 잠이 들 때는 가슴에 안기기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어미보다 몸 평수가 넉넉한 내 품이 편한 모양이다. 안겨서는 손이 들썩이도록 방귀도 잘 뀐다. 두 다리를 치켜들고 얼굴이 발개지도록 끙끙거리며 응가하는 신호도 준다. 몸으로 표현하는 녀석 마음을 읽지 못해 난감할 때가 있으나 눈 맞추어 옹알이하면 온몸이 녹아내린다. 그럴 때는 아기 뺨을 쪽쪽 빨기도 하는데 이것만큼은 딸이 안 볼 때 해야 더 맛나다.

딸은 출산 휴직 중이다. 업무 특성상 두어 해 쉬면 경력단절이 될까 염려되었는데 무엇보다 일을 좋아하여 석 달만 쉬기로 했다. 복직 후 육아 도우미는 내가 자청한 일이다. 딸이 출근하면 손녀를 봐주기로 약속하고서 그날이 오기도 전에 여차하면 달려간다. 처음에는 딸의 산후 몸 관리가 걱정되어 다녔는데 내리사랑이 얼마나 무서운지 헤어날 수가 없다. 윤회설을 떠올리면 손녀가 어느 대 조상의 환생이 아닐까 경이롭기도 하다.

사실은 딸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감춰둔 속내가 있다. 나는 당시 직장을 다녔고 어머니가 아이를 키워 주어 세심하게 육아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딸의 태기 소식을 듣자마자 하모니카를 배우고, 그림공부도 시작했다. 그렇게 배운 하모니카로 동요를 들려주고, 할미 목소리로 동화책도 읽어 주고, 손녀 손등에 내 손을 포개어 함께 그림도 그릴 거다. 입맞춤이 충치의 원인이라는 딸의 눈치 안 보고 뺨도 실컷 빨 거다. 한 달에 하룻밤은 내 집에서 녀석을 품에 끼고 잠도 잘 거다. 하지만 내 삶에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몇 가지 취미 생활을 포기해야 하고 당분간 친구들과 만남도 늘일 수 없다.

한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오마스족의 격언처럼 아이 돌보는 일은 거룩하다. 육체적으로 고달플 때도 있지만 아이가 그 고단함을 간간이 어루만져 준다. 하지만 자식 치다꺼리로 생각되어 시대에 뒤떨어진 어리뜩한 노인네 되기가 십상이다. 그러기에 육아고통이 두려운 젊은이는 출산을 기피한다.

주변에 보육 시설이 많다. 일 대 일의 보육이 아니지만 양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미의 사회생활로 인하여 젖먹이를 시설에 맡기는 건 애잔한 일이다. 자식에게 부모는 안온한 숲이거늘 여건이 된다면 육아의 고통을 덜어줌이 마땅하지 않을까. 다행히 나는 딸과 같은 지역에 살고 건강에 별문제가 없으므로 마음을 낸다.

손녀가 품에 안겨 잠을 청한다. 자장가를 흥얼거리자 음정과 박자가 어눌함을 알아채는지 잠결에 웃는다. 아미(蛾眉) 아래 볼록하니 내리감은 눈이 초승달이 되고, 소리 없이 벌어진 입은 함박꽃이다. 내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가. 잠시 꿈틀거리더니 곤하게 잔다. 아기의 얼굴에 조심스레 입을 댄다. 입술에 닿는 뺨이 갓 쪄낸 찐빵처럼 말캉거린다. 물씬 풍기는 젖내마저 달콤하다.

나는 대책 없는 팔불출 할미다.

   
▲ 이명길씨

■ 이명길씨는
·2009년 토지문학제(하동) 수필 수상
·201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2017년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저서 수필집 <나무속으로 들어간 새>

 

 

 

 

   
▲ 박임규씨

■ 박임규씨는
·연필인물화전
·울산수채화협회전
·신탐구생활전
·울산구상작가회전 / 소통과 확산전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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