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세상이 모두 얼어붙은 겨울밤 금방 꺼낸 뜨거운 고구마, 쩔쩔 끓는 아랫목에서 마시는 살얼음 동치미…. 이냉치열 이열치냉의 도(道)가 동치미에 다 들어 있다. 아랫목에는 음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남정네들이 마실가고 없는 틈에 아이들과 함께 마시던 그 동치미는 축복이었다.

잘생긴 무를 골라 동치미를 담근다/ 우물물로 깨끗이 씻어 항아리에 쟁여 넣으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먹을 것도 변변치 않던/ 산골 그 겨울밤/ 살얼음 언 동치미 한 사발/ 꺼내 먹으면/ 가슴속이 확 뚫렸지// 애들은/ 냄새 난다고/ 동치미를 싫어하지만/ 지들이 우째/ 동치미의 참 맛을 알리요// 겨울 찬바람이 불면/ 뒤란에서/ 동치미 꺼내주시던/ 어머니가 보고파 진다. ‘동치미’ 전문(이문조)

동치미는 원래 ‘동침(冬沈)’으로 표기했으나 백성들이 ‘동침이’ 또는 ‘동치미’로 부르면서 고착됐다(동국세시기). 동치미는 고구마, 메밀국수, 팥죽, 아랫목, 그리고 동치미를 담그는 어머니의 시린 손과 한 세트다. 삭혀야 제맛이 나는 동치미는 부모의 사랑을 대변하는 상징어다. 초연 이후 10여년 동안 극장을 울음바다로 만들어버린 연극 ‘동치미’는 가슴 속에 맺힌 자식들의 뜨거운 응어리였다.

 

동치미는 함경도를 제일 먼저 친다. 국물을 많이 우려내고 얼려 아랫목에서 이가 시릴 정도로 마셨다. 여기에 메밀국수나 냉면을 말아먹기도 했다. 겨울철에는 체열을 뺏기지 않기 위해 체열을 복부 깊숙한 데 저장하는데, 동치미는 이 열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복부의 열을 분산시키고 소화작용을 돕는 것이 동치미다. 발효 과정에서 생산되는 탄산은 동치미가 아니라 최고의 청량음료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라는 속담의 동치미는 특히 디아스타제 효소가 많이 있어 고구마나 떡 같은 녹말을 시원하게 분해해준다.

자연음식요리가 자영스님에 따르면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에는 “가장 몸에 이로운 채소를 무”라고 했고, <황제내경>에는 “인체의 기운이 ‘겨울에는 가라앉는다(冬沈)’하여 동치미를 먹으면 내열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속담에 ‘토마토가 빨갛게 익를 무렵이면 의사 얼굴은 파랗게 변한다’는 말이 있다. 토마토를 많이 먹으면 건강이 좋아져서 의사는 장사가 안된다는 말이다. 동양에서도 ‘늦가을 시장에 무가 나올 무렵이면 의원이 문을 닫는다’는 속설이 있다. 동치미는 추운 겨울 어머니의 시린 손 끝에서 나오는 전설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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