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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상의 世事雜談(20)]낙제(落第)의 미학(美學)

기사승인 2019.02.21  21: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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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생시절 1학기 마친뒤 휴학으로
그당시 남들보다 긴 대학생활 보내
사회생활 다소 늦게 시작했지만
인생 살아오며 핸디캡 전혀 못느껴
졸업 유보됐다고 절대 낙담 말길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대학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고 취업, 진학 등 진로가 정해져 기분 좋은 졸업을 맞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취업준비가 미비하든지 사회진출을 위한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해 졸업을 유보하는 사람도 있다. 졸업유보든 학년진급유보든 내용은 유급이다.

유급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성적은 학년진급하거나 졸업하는데 문제가 없으나 그 성적이 당사자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스스로 같은 학년에 더 머무르는 ‘자진유급(自進留級)’이 있다. 둘째는 성적미달로 인해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정상졸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학칙에 의해 학년진급이 불허되는 소위 ‘강제유급(强制留級)’이 있다. 이 강제유급이 바로 ‘낙제(落第)’이다. 당연히 자진유급은 불명예스럽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시간과 돈을 들여 성적 세탁한다고 주위로부터 질투를 받기까지 하지만, 강제유급(낙제)은 다소 불명예스러운 게 사실이다.

한편 요즘은 방학을 이용한 계절학기도 활성화되었고, 재학 중 어학연수 또는 취미나 경험을 쌓는다고 일부러 휴학하는 사례도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지금 몇 학년이냐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나아가 낙제나 유급의 의미도 없어졌다. 즉 4년 만에 졸업하느냐(정상 졸업), 그 이상 다니다 졸업하느냐(졸업 유보)의 두 가지 경우만 있을 뿐이다. 최근엔 대학을 4년 이상 다니는 사람 숫자가 대폭 증가해 오히려 정상 졸업이 비정상으로 보일 정도다.

생각해보면 대학을 4년에 마치는 소위 정상 졸업을 못하면 가족 친지 앞에서 얼굴 들기조차 부끄럽던 시절이 있었다. 한 학기라도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월급봉투 받는 것이 곧 성공이요, 부모의 바람이었기에 그러했다. 그리하여 자식의 나이를 부풀려 초등학교에 조기(早期)입학시켰으며, 성적이 좋아 학년을 뛰는 월반(越班)이라도 하면 가족의 경사이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나 대학에 조기 진학이라도 하면 이 또한 큰 자랑거리였다. 그러니 당시엔 남학생의 경우, 30개월짜리 군대냐, 36개월짜리 군대냐, 아니면 12개월짜리 방위병이냐는 중대 무쌍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기야 지금도 24개월이냐 20개월이냐 가지고 따지는 모양이구만서도. 그러니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선 학창시절에 친구관계 구축, 취미생활 향상, 교양과 인격 배양 등 공부 외적 요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이 1970년 3월. 집은 서울의 남서쪽변두리인 신촌 쪽 한강변, 대학의 위치는 정반대쪽 동북단 불암산 밑, 논밭 한가운데에 있었다. 집에서 6시 반에 나와 빠른 걸음으로 20여분 걸어가서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청량리까지 간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끼고 제대로 서있기 위해선 한 겨울에도 땀이 범벅일 정도로 사투를 벌여야 한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터덜대는 시골길을 한참을 가야 학교 앞이다. 다시 뛰어 강의실에 도착하면 9시. 기진맥진. 그런데 휴강이다. 맥이 풀린다. 매일 교련 반대, 반정부 데모요, 개학하면 얼마 안 있어 휴교령이 내리고, 학내에 군부대가 천막치고 상주(常駐)하는 일도 빈번했다. 휴교하기 전 짧은 정상수업기간 중이나마 교수가 들어와서 강의를 하면 이번엔 그 내용이 영 흥미가 없다. 제목만 00학(學), 00론(論)이지, 고등학교 때 배운 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하여 등교 포기 결심하는데 그다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5월 들어 학교 대신 명동(明洞)으로 출근하여 음악 듣고, 책 읽고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엔 고3 학생 가르쳐 용돈 벌고, 친구들 만나 한잔 하고의 한 학기를 보냈다. 당연히 전 과목 F, 낙제는 맡아놓은 당상이니, 등록금이나 아끼자고 2학기를 휴학하였다. 1학기 땐 괜찮은 성적을 받은 나의 절친(切親)이 ‘네가 외로울 것 같다’며 나와 시간을 같이 지내주었다. 그는 오히려 2학기의 전 과목이 F였다. 다음해에 우리 둘은 두 번째 1학년이 되었다. 친구는 공식적인 낙제, 나는 휴학의 탈을 쓴 낙제였다. 우리는 1학년 교양과정을 두 번 다니면서 남들보다 두 배(?)의 교양을 쌓았다. 입학동기와 졸업동기를 합쳐 두 배로 많은 친구들도 가지게 되었다. 그토록 ‘빨리빨리’를 추구했던 그 시절에 그와 나는 5년 만에 느긋하게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군대도 40개월간(친구는 52개월) 갔다 왔고, 푼돈 벌어서 외국유학도 갔다. 아무리 호주머니가 궁해도 스테이크 먹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학위취득 후 귀국하여 우리가 제대로 첫 월급봉투를 받은 것이 34세 언저리다. 나는 대학에서, 그는 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일찍이 사회에 진출한 친구들이 대체로 27세~60세의 기간을 회사에서 보냈다면 나는 34세~66세의 기간을 대학에서 보냈음이 다를 뿐이다.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늦게까지 현직에 있었다는 얘기다. 퇴직 후에도 취미생활을 중심으로 한 제2의 인생을 알차게 보내고 있음은 바로 49년 전 낙제사건으로 인해 취득한 남다른 인생경험과 폭넓은 친구관계망 때문이라고 나는 자신 있게 결론한다.

누가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게 뭐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 1초의 주저도 없이 대학생시절의 낙제사건이라고 답한다. 버릇이 되었는지 내가 지금 4학년에 재학 중인 실용음악학과도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유보했다. 참고로 나의 그 절친은 지금도 내로라는 대기업체의 사장직 졸업을 계속 유보중이다. “졸업 유보된 여러분, 절대 낙담하지 마세요.”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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