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묵은 매화등걸에서 꽃이 만개하여 꽃그늘 드리운 날,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의 동사(桐寺)지를 찾았다. 절은 없어지고 오래된 나무들이 우뚝우뚝 서서 쌍탑을 호위하고 있다. 보물 제12호, 제13호로 지정된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다. 천년을 넘어 그 자리를 지켜온 주인답게 너그러운 품을 내어 멀리서 온 길손을 맞이한다.

일반적인 쌍탑은 거의 같은 모양과 형식으로 대칭을 이루기 마련이다. 그러나 높이가 다른 삼층과 오층의 탑은 마치 오누이 같다. 계룡산 청량사터의 남매탑을 보는 듯하다. 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했지만 규범이나 틀에서 살짝 비켜나 기개 넘치는 고려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두 탑이 건립되던 10세기는 격동의 시대였다. 신라가 분열되고 해동성국이라 불리던 발해도 운명을 다하여 마침내 고려가 들어섰다. 태조 왕건은 발해 유민도 받아들이고 신라인도 따뜻하게 품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어우러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고려 불교도 그러했다. 지방의 호족 세력들도 그들만의 신앙처가 필요했다. 개경이 아닌 지방에 수많은 절을 짓고 거대한 철불을 만들고 탑을 세웠다. 궁마을의 동사에 두 탑이 건립되자 한강 주변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연등회를 열고 탑돌이를 하며 정토세계를 꿈꾸었다.

▲ 보물 제 12호, 제 13호로 지정된 하남 동사지 쌍탑.

흔적만 남은 불대좌 자리에 서서 그때를 잠시 그려보다 나도 탑돌이를 한다. 지붕돌은 군데군데 깨어져 나가고 하층 기단의 일부가 흙속에 묻혀있다. 탑의 부재사이에 틈이 생겨 벌레도 제 집인 양 드나든다. 그러나 지붕돌의 모서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 모습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경쾌하다. 탑을 내려다보는 키 큰 상수리나무 둥치에 법정 스님의 글이 단정하게 걸려있다. ‘맺힌 것을 풀고 자유로워지면 세상문도 활짝 열린다.’ 태조 왕건도 새 나라를 열면서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고려인의 화합과 상생의 기운이 담긴 두 기의 탑을 오래 바라본다. 천년을 넘어 함께 해왔고 다시 천년을 향하고 있는 두 탑의 정겹고 따뜻한 동행이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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