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고령의원 내치는 정치생태계
의원 역할론에 대한 자가점검 필요
연륜의 정치 펼칠 최다선 모델 기대

▲ 김두수 정치부 서울본부장

7선국회의원을 지낸 한 유력정치인이 오래전 여의도를 떠난 뒤 기자와 함께 나눈 ‘유쾌한 언어’ 하나. “유권자들 앞에만 서면 모두가 좋다고 박수 치면서도 막 돌아서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솔직히 죽을 맛이었다.” “공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심사위원중에 ‘피도 마르지 않은’ 후배가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면서 해대는 ‘선배님, 고령에다 여론조사 결과도 안 좋은데 공천을 줘야 하는 것이냐’라는 핀잔을 듣고선 당장이라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위기때마다 정면돌파 승부수를 띄우면서 6선때 국회부의장에 이어 7선에선 국회의장을 지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YS와 함께 한국의 민주화와 헌정사에 길이 남은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올곧은 정치인으로 각인된 그는 경남 창원출신 황낙주(1928~2002) 전 국회의장이다.

21대 총선(2020년 4월15일)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의도 정치권은 의원정수 비례대표 연동제 관련 공직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을 놓고 초강경 대치 국면이다. 특히 공직선거법의 강경대치 이면은 진영마다 금배지 숫자계산과 직접 관련있고, 또다른 이면엔 개별 의원들의 정치 목숨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역대총선 직전 ‘공천지형’을 보게되면 전두환 신군부등 일부 ‘칼잡이 정권’이 당 지도부를 무력화시킨 파행적인 공천외엔 인생이모작의 황혼이혼보다 더 어려운 게 현역의원 물갈이다. 여의도 국회에서 최다선 정치인은 9선의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JP(김종필 전 자민련총재), 박준규 전 국회의장 등 3명으로 모두‘고령’때까지 정치를 했다. 10선은 아직 없다.

기자가 2년전 문재인 대통령 방미 동행취재때 확인된 미의회 최고령 의원은 93세(1917~2010)까지 상·하원에서 57년동안 의정활동을 한 로버트 버드의원과 근자에 2년임기의 하원에서 27선을 기록한 존 코니언스(당시 88세)인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로버트 버드의원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3년 1월초 의사당에 입성한 뒤 세상을 떠난 2010년까지 1만8500회 이상의 의사일정 표결에 참여한 신화도 있다. 또한 자신이 반대하는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무려 14시간동안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한 신기록도 있다.

그가 최장수 의원의 이면엔 오직 국민위한 민생 법안발의 비롯한 열정적 활동과 자신의 지역구인 웨스트 버지니아 발전을 위해 연방예산을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날땐 워싱턴 백악관과 의사당은 조기를 달아 애도를 표하기까지 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국회의원의 힘과 영향력은 현실적으로 선수(選數)가 우선이다. 하지만 서울 여의도는 21대 총선을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현역의원, 그것도 다선·고령 의원들의 몸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한국정치에선 다선·고령의원을 무조건 쳐야 한다는 이상한 정치개혁의 후진성도 심각한 문제다. 그럼에도 다선·고령 의원들의 역할론에서도 스스로 개혁해야 할 과제 역시 없지 않다.

울산에선 6선에 도전하는 자유한국당 정갑윤(1950년생) 의원, 5선도전이 확실한 무소속 강길부(1942년생) 의원을 비롯해 3선 도전장을 던진 박맹우(1951년생)·이채익(1955년생),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이상헌(1954년생) 의원 등은 모두 60대 중후반에서 70대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만 64년생으로 50대 중반이다. ‘워라밸’이 일상화 되면서 건강과 생활수준 역시 높아지고, 70~80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상대적으로 젊은 원외 도전자들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정치 소비자들로부터 밀려드는 권태감과 피로감, 국회에서 패스트트랙과 관련된 여론의 칼날위에서도 워싱턴 의회의 93세 ‘로버트 버드’와 같은 최다선 모델은 울산에선 과연 ‘연목구어’일까. 김두수 정치부 서울본부장 duso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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