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재난 가능성 크지만

타시도 대비 인력 태부족

참혹한 현장 잦은 목격탓

스트레스와 우울감 호소

소방관 건강관리·치료위한

전담부서도 없어 개선 필요

눈 앞에서 동료를 잃었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본보 지난 12일 3면 등)을 한 고(故) 정희국 소방장 사고를 계기로 울산에 정신적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소방관들이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트라우마 센터’ 설립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울산은 석유화학단지와 액체물류 중심의 울산항 등 대형재난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지역으로 폭파사고 발생시 등 최일선에서 대응해야 할 소방관들이 트라우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지만 소방환경은 극도로 열악해 시급성이 더하다.

◇전국 최대 소방 수요, 환경은 열악

울산은 소방관들이 인력 부족과 산단 밀집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 등으로 배치를 기피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채익 국회의원이 지난 4월 개최한 소방관 처우개선 논의 현장 간담회에서는 울산 소방환경의 열악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울산은 국내 최대 국가산단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대형재난 발생 가능성이 높으나 소방력 기준 대비 현장인력은 약 30% 가량 부족한 실정이다. 전체 정원 기준 현재 인력도 부족하며 현장인력은 더더욱 부족하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지만 울산 소방공무원 1인이 담당해야 하는 인구는 1000명이 넘는다. 충남이나 전남, 경북, 경남, 강원 등과 비교하면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200명 가량이나 더 많다. 1인당 관할면적도 1.0㎢로 광역시 중에서 가장 넓다. 소방차 평균 도착시간은 10분7초로 광역시 중 최하위 수준이다.

◇보건전담부서조차 없는게 현실

소방공무원 1인이 경험하는 트라우마가 평균 6.36건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심리치료나 정신과 상담을 받는 소방관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재난과 사고 유형이 복잡·다양해지면서 소방관들의 스트레스와 외상 후 트라우마, 우울증 등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울산은 타 시·도와 달리 소방공무원들의 건강관리나 치료를 전담하는 부서조차 없다. 담당자 1명이 고작이다. 대전이나 전남 등 주요도시 소방본부가 보건안전관리 부서를 설치해 운영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울산소방본부가 1년에 2번 마음치유 프로그램과 병원 치료비 지원 등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희국 소방장이 태풍 차바로 인해 동료를 잃은 후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치료가 가능한 치유시설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고 정 소방장은 사고 이후 정기적으로 관내 병원을 통원하며 약을 복용하는 등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았고, 센터를 전담하는 정신과 교수와도 꾸준히 상담을 했지만 마음의 짐을 더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 소방장은 메모에 “정신과 치료도 상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남기기도 했다.

한 현직 소방관은 “소방 업무 특성상 내가 겪었던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음 놓고 터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면서 “시간과 장소의 한계 속에서 결국 상담은 형식적으로 진행된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트라우마 센터 더 늦춰선 안돼

최근 울산에는 현직 경찰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예방하기 위한 마음동행센터가 개소했다. 센터에는 임상심리 전문가를 배치, 직무 스트레스에 따른 상담과 치료를 지원하고 병원과 연계해 통합 검사와 집중 치료하는 기능을 담당할 전망이다. 센터는 참혹한 사건·사고 현장을 자주 목격하는 경찰관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적 문제를 상담·치료하기 위해 설립됐다. 전국 지방청마다 1개소씩 18곳이 운영될 예정이다.

경찰관뿐 아니라 소방관 역시 직무 특성상 참혹한 사건사고를 목격하며 구조자를 구하지 못했을 경우 따르는 죄책감 등으로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잦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소방관 4만5700여명 중 우울증 진단 받은 소방관은 4.9%인 2230여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도 4.4%인 2000여명에 달했다.

지역의 한 소방관은 “구조 현장에서 일어난 일로 받는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을 마음 놓고 터놓을 수 있는 창구가 전혀 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울산에 보건전담 부서나 트라우마 센터 설립 등으로 소방관 처우 개선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세홍기자 aqwe0812@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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