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F1963과 서울 문화비축기지-(2) 공간을 고쳐쓰는 방법

▲ 부산 고려제강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F1963’의 주출입구.

성장세 둔화와 인구감소 추세 맞춰
기존 도시 고쳐쓰기 고민해야할 때
대규모 철거·재개발 ‘장소성’ 지워
지역 정체성 찾아내는 것이 최우선
프로젝트 최대한 작은 단위로 줄여
지역 공동체 의견 수렴과 협의 필수

내달 23일 제3회 울산건축문화제를 앞두고, 1년 만에 우리 사는 도시, 울산의 공간 이야기를 풀어본다. 오늘은 어느 영화의 한 대목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사는 환경과 공존하게 되어 있는데 너희 인간은 그렇지 않거든. 너희는 어떤 장소로 옮기면 그곳에서 번식하고 거기서 나는 자연 자원이 바닥날 때까지 번식을 계속하지. 그래서 너희가 생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또 다른 장소로 퍼져 나가는 거야. 지구상에 또 하나 이런 패턴을 따르는 생명체가 있지. 그게 뭔지 아나? 바로 ‘바이러스’야.” - 영화 ‘매트릭스’(1999년작) 중에서

▲ 공연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F1963’의 중정 모습.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융화돼 살아가는 법을 알았다. 집터를 고르는 것부터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형성하는 것까지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기 보다는 그 속에 우리가 하나의 일원이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어떠한가. 새로 짓고 소모하고 낙후되면 이동한다. 다시 도시를 건설한다. 기존의 노후화된 도시는 버려진다. 마치 몽골초원의 유목민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날 때와 같다. 이와 같은 패턴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신도시를 건설하면 사람들이 몰린다. 울산도 마찬가지다. 최근 울산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빚어졌고 현재도 이어가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도 이어질 것 같다. 울산시 중구 일원의 혁신도시가 그랬고, 북구의 송정역세권과 울주군의 고속철역세권이 뒤따를 것이다.

▲ 공연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F1963’의 갤러리 내부 모습.

새로운 도시공간에는 지가가 오르고 도로가 뚫리고 전기, 상·하수도, 학교, 공원 등 기반시설이 설치된다. 건설업자는 대규모개발로 쉽게 돈을 벌어서 좋고 기존의 지주들은 지가가 올라서 좋고, 겉으로는 모두에게 좋은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기존의 도심은 공동화되고 활력을 잃고 슬럼화가 가속된다. 이제는 더 이상 인구나 경제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우리나라도 빠른 시일내에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출산율의 감소로 인구증가의 속도도 더디고 머지않은 미래에 감소로 돌아설 것이다. 더불어 경제의 발전양상도 성숙단계로 접어들어 과거와 같은 급속한 경제성장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우리에게 더 많은 도시와 더 많은 집들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까운 나라를 예로 보자면 이미 일본에서는 지역의 중소규모 도시에서는 빈집들이 늘어나 처치곤란이라고 한다. 넓어진 도시는 지자체에게도 부담이다. 낙후된 구도심을 재정비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야 하고, 확대된 도시의 인프라를 관리하고 유지보수, 신설하는 비용도 지자체의 몫이다.

▲ 부산 산복도로의 야경.

상황에 따라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도 있겠지만 이와 함께 요즘은 기존의 도시를 시대에 맞게 고쳐 쓰는 것도 중요하다. 대규모의 철거와 재개발은 그 장소에 새겨진 장소성을 소거시키고 다시 무로 환원시킨다. 그리곤 ‘산토리니식’이나 ‘베네치아식’이라는 외래종을 이식해서 도시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이런 방식은 지양되어야 할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도시를 고쳐 쓸 것인가.

먼저, 최대한 작은 규모로 프로젝트 단위를 슬림화해서 지역의 공동체 수준에서 협의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직접 시행할 수 있는 규모여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잔치가 아니라 진짜 그 지역에 거주하며 오랫동안 마을의 변천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요구가 반영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담장을 허물고 주차장을 마련할 경우 그에 따른 비용을 지원해준다든지 하는 방법을 택해야 주민들의 호응과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지속가능해진다.

▲ 원형의 석유저장탱크의 외형을 유지한채 재생한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마지막으로 지역의 정체성과 부합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찾아내고 적용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도시재생은 한 마을이 벽화를 그려서 유명해지면 전국 방방곡곡 그릴 수 있는 모든 벽에는 벽화를 그린다. 그런 방식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얻기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지역의 독특한 장소성에 부합된 방법으로 도시재생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주민과 관, 또 참여하는 전문가들 간에 신뢰와 소통이 장시간에 걸쳐서 필요할 것이다. 일견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돌아가느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 진정 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울산건축사회 회원들은 이에 대한 고민을 풀기 위해 해마다 도시와 건축기행을 다녀오고 있다. 10여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과 큰 돈을 들여 유럽이나 미주 등을 둘러보기도 하지만 간혹 울산과의 괴리감이 커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요즘은 개인적으로 국내기행에 자주 나선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곳이긴 하나, 일단 현장에 가면 간접경험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그 곳만의 살아있는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잘 시행된 도시재생 또는 건축재생 사례 몇가지를 공유하며 마무리한다.

△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F1963’

F1963은 고려제강이 1963년에 처음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건립한 와이어 공장이 시초이다. 약 45년간 와이어를 생산하던 공장을 2016년 부산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하였고 이를 계기로 기존의 공장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공장의 골격과 지붕 등의 외피를 유지하면서 재생되었다. 그리고 공장에서 나온 자재들을 활용하여 외부의 바닥포장이나 의자와 같은 퍼니처를 만드는 것에 활용한 부분을 보면 건축가의 섬세함이 드러난다.

△석유비축기지에서 창작공간으로 ‘문화비축기지’

▲ 김효엄 무아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울산광역시건축사회 회원

문화비축기지는 서울 마포구 매봉산 인근에 위치한다. 1973년 석유 파동의 여파로 석유를 비축하기 위한 5개의 대형탱크가 건립되었다. 그렇게 유지되어오던 비축기지는 2002년에 이르러 월드컵개최와 안전상의 문제로 폐쇄 되었다가 10년이 넘는 논의 끝에 2013년 문화비축기지로 재생하기로 결정되어 2017년에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원형의 석유저장탱크의 외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파빌리온과 공연장, 문화복합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낙후된 주거지의 환경개선 ‘산복도로 르네상스’

부산의 도시형성에 특성상 한국전쟁 중 피난민의 정착지와 급속한 개발로 인한 경사지에 불규칙적으로 형성된 주거지역이 많다. 이 지역을 관통하는 산복도로 일대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주거환경이 낙후되고 접근성의 불량과 공공,문화시설의 부족으로 인구감소 및 빈집이 늘어나 재생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기존의 마을 공동체, 공간, 도시경관 역사적 맥락을 유지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마을경제를 회복시킨 좋은 사례이다. 김효엄 무아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울산광역시건축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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