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성남동 미니공원 부지
문화재 표본조사 중 드러나2m 깊이 땅속서 유적 발견
성곽 외벽·내벽 형태 온전 분청사기 조각도 함께 출토
축성시기 규정 중요 자료로

 

울산 중구 원도심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울산읍성’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문헌상으로만 전해지던 울산읍성 실물이 무려 422년만에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지난 수십년 간 울산에서는 울산읍성을 주제로 다양한 학술연구와 문화·관광프로그램이 시행됐지만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 역사적 의미만 부각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뚜렷한 실물 유적을 확인한 이번 발굴작업으로 앞으로는 정확한 성곽 위치를 규정하는 후속작업과 실질적인 유구활용 및 보존방안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 울산시 중구 성남동에서 ‘울산읍성 이야기로(路) 쉼터공간(미니공원)’ 조성사업 중 울산읍성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구가 최초로 발견됐다. 14일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전문가 자문위원들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울산 중구와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는 ‘울산읍성 이야기로(路) 쉼터공간(미니공원)’ 조성부지에서 문화재정밀발굴조사를 실시, 약 2m 깊이 땅 속에서 울산읍성 유구를 확인했다고 14일 밝혔다.

조사지역은 70㎡의 작은 면적(울산시 중구 성남동 166­4)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외벽 2.7m, 내벽 7.7m의 체성이 온전하게 확인됐다.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1m(85~115㎝) 내외, 내외벽 석간의 폭은 3.3m 정도다.

유구는 울산읍성 축조과정 중 가장 아랫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울산읍성 축성뿐 아니라 조선 전기 성곽축조 연구에 중요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구가 자리한 곳은 원래 강수위가 자주 범람하는 습지로 외벽을 구성하는 면석의 크기는 병영성과 비교해 두배나 컸다. 울산읍성은 이같은 지형적 한계에다 육중한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성곽 기초공사인 박석을 두개층에 걸쳐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함께 출토된 최고급 분청사기 조각(15세기 제작)은 문헌에 기록된 것처럼 15세기 울산읍성 축성시기를 규정하는 중요 유물로 판단된다.

▲ 울산읍성 유구가 발견된 현장에서 출토된 사기 조각들. 김동수기자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는 “울산읍성 실체를 발견한 첫 사례로 유구의 중요성이 확인된만큼 향후 확장조사가 필요하다. 해당 유구는 울산읍성 남문지와 서문지로 추정되는 사이에 해당한다. 보존 차원에서 일단은 성토하고, 울산시와 중구, 문화재청과 보존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중구는 “울산읍성 성벽 이미지를 활용한 휴게공간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실제로 읍성 유구가 나와서 놀랐다. 보존안과 관련한 전문가 제언을 수렴해 향후 사업방향을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4일 현장 자문회의에서 한삼건 울산대 교수는 “지난 2005년 학술조사에서 읍성 발굴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번 발굴조사는 그 첫 단추다. 향후 원도심 일원 또다른 곳에서 읍성의 실체를 확인하는 발굴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울산읍성

조선시대 성곽으로 울산 중구 관내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6개 성(城) 중 하나로, 북정동~교동~성남동~옥교동에 걸쳐 둥근 원 형태로 축성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따르면 성곽의 둘레는 1.7㎞, 높이는 4.5m였다. 조선 성종(1477)대에 쌓았고 120년간 존속하다 정유재란(1597) 때 왜군들이 왜성(학성)을 쌓기 위해 돌을 가져가면서 허물어졌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