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법, 30대 2명 집유선고

공범 의식 회복 양형에 감안

박주영 부장판사 격려 남기며

집에 갈 차비·책 선물로 전해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이들에게 법원이 삶의 동기를 부여한 뒤 선물과 차비를 건네며 스스로를 아껴 달라고 당부했다. 예상치 못한 격려와 선물을 받은 두 피고인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울산지법은 자살방조미수 혐의로 기소된 A(30)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B(36)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령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은 올해 8월 울산의 한 여관에서 C씨와 함께 유해가스를 들이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지만 실패해 서로의 자살을 방조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각자의 의지를 강화해 실행을 용이하게 도움으로써 타인의 생명을 침해할 위험이 큰 범죄라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피고인들이 뒤늦게나마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있는 점, 의식불명 상태인 공범이 의식을 회복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를 돌아보며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작은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A피고인은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어머니가 사망하자 충격을 받고 수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했다. 재혼한 뒤 연락이 끊긴 아버지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고,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과의 관계는 유지됐지만 거리상 자주 만나지는 못해 친한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B피고인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유흥에 빠져 세월을 보냈고, 가세가 기울고 집안에서 외면을 받은 뒤 ‘친구가 없고 못나고 초라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박주영 부장판사는 선고 후 ‘피고인들에게 전하는 간곡한 당부 말씀’이라는 글을 통해 “피고인들의 이제까지 삶과 죄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끝났다”며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각자 써 내려가야 한다. 남은 이야기가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한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한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자신의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것”이라며 “비록 늦었지만 여러분의 이야기를 가족과 동료 재감인과 우리가 듣게 됐다. 우리들이 이야기를 귀담아듣게 된 이상 여러분은 이제부터 마음대로 이야기를 끝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박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에게 각각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책 1권씩을 선물했다. 또 휴대전화까지 처분해 경기도에 있는 여동생 집까지 갈 차비조차 없었던 A피고인에게는 “밥 든든히 먹고, 어린 조카 선물이라도 사라”며 20만원을 책에 넣어 건넸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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