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차별은 불평등 배분으로 이어져
울산에 ‘여성들만의 공간’ 생긴다면
지역여성들의 잠재된 역량 개발 기대

▲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공간은 인간의 일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주요소이다. 공간은 사회적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공간을 사회적 구성물로 인식한 20세기 중반의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공간이 사고와 행위의 도구이면서 생산, 통제, 지배, 권력의 수단’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2011). 르페브르에 따르면 공간은 권력을 반영하고 권력은 다시 공간을 설정한다. 공간은 경제적 수준, 성별, 장애여부, 연령 등 다양한 범주에 따라 특정 이용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형성된다는 뜻이다. 공간의 차별적 구성은 다시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으로 이어진다. 결국 별도의 정책적 개입이 없다면, 공간은 권력 불균형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페미니즘의 선구자인 영국의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1929년 <자기만의 방>이란 책에서 공간과 성별권력관계를 지적한 바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라는 표현을 통해 언급한 ‘공간’의 중요성은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다.

울프와 르페브르의 논의를 중심으로 공간과 성별불평등의 문제를 살펴보면 공간의 설계방식과 공간의 목적이라는 두 가지 논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논점은 공간 자체에서 성별 불평등이 감소할 수 있도록 이용자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설계, 건축하는 것이다. 두 번째 논점은 성별 불평등 완화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 논점에서 이야기하는 공간자체의 불평등 제거와 이용자의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한다는 논의는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여 공간에서 성별 불평등이 나타나지 않도록 공간을 설계하고 시설물을 건축하는 것은 가능하게 하였으나 두 번째 논점인 성별 불평등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자는 논의는 아직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울산에서 여성을 위한 공간은 다른 시·도에 비해 많지 않다. 울산의 새로운 여성공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수원시 여성휴식 공간 ‘휴’와 서울의 ‘여성플라자’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수원시 여성문화공간 ‘휴’는 타 시도의 벤치마킹 사례로 손꼽힌다. 현재 휴식, 힐링, 웰빙, 행복 및 창의성의 4개 영역을 주요 사업골자로 삼고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성 이용자들이 관심사에 따라 공간 이용과 함께 동아리를 결성하여 지속적으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친화도시 사업과 관련하여 하나의 우수 모델로도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의 ‘여성플라자’는 교육실, 회의실, NGO 및 동아리 공간 등을 제공하고, 여성단체 운영활성화를 위해 혜택을 제공하는가 하면, 성평등 도서관, 일시 돌봄서비스, NGO센터 등을 제공하는 등 성평등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성별 불평등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을 신축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상징적인 여성공간을 만들고 나서 공간에서 얻어지는 이용자의 만족도나 공간에서 행해지는 사업에 대한 효과성을 단기간에 검증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시도의 경우처럼 여성들이 여성들만의 공간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된다면 울산지역 여성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은 현재보다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새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경력단절여성이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고, 청년여성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할 수도 있다. 지역의 여성 NGO단체가 매달 지불하는 건물 임대료에 대한 걱정없이 여성인권을 위한 활동에 매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가사노동과 육아에 지친 여성이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다양한 여성 동아리 회원들이 동아리방으로 주어진 공간에서 마음껏 자신의 잠재된 역량을 개발하여 지역의 여성문화를 이끌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2020년 새해 경자년에는 울산에서도 여성을 위한 공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길 바란다.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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