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토피아를 위하여-우리는 할 수 있다. 희망과 기대, 그리고 열정과 노력이 있으면 유토피아(Utopia)는 곧 우리의 현실이 된다. 느린 걸음이라도 꾸준히 가볼 일이다. 고두영 作(Mixed media on canvas)

공부란 내가 뭘 모르는지 깨닫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세월을 잔뜩 껴입은, 칠십 평생
책상 서랍 속에 간직해두었던
배우고자 하는 철통같은 의지를
매일 꺼내는 ‘소녀’와의 만남이니
나는 그분들 앞에서만큼은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은 의지를 품고 살면 꺾이지 않는다. 삶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장예모 감독)는 마치 우리 교실 풍경 같다. 모두가 가난하던 육, 칠십 년대에 교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자라서 돌아온 곳이 우리 교실이다. 학생들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장난을 치다가 “우리 선생님 오셨다.”라며 부산하게 흩어진다. 영락없이 초등학교 교실 풍경이다. 나는 그분들 앞에만 서면 설렌다. 설레서 오래 본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를 보면서 나는 웨이민쯔 선생이 된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세 살짜리 선생이 열 살 먹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황당함이나, 선생이 학생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것이 어쩌면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에서다. 허름한 시골구석에 자리한 영화 속 학교는 지은 지 사십 년도 넘었다. 학생은 스무 명 남짓하다. 촌장이 그 지역을 관할하고, 선생은 여섯 달치 월급을 받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때로는 교실 풍경이 소설보다 극적일 때가 있다. 영화에서처럼 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펼쳐진다. 교육 수준이 그 나라의 문명을 말해준다. 먹고 살아야 문명도 할 마음이 생긴다.

영화 속 가오 선생은 어머니가 위중하여 한 달 가량 학교를 비우게 된다. 그는 고심 끝에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세 살인 웨이민쯔에게 오십 원을 주기로 하고 임시교사로 채용을 한다. 웨이민쯔는 중국 인민당 노래 한 소절도 제대로 부르지 못 할 만큼 배움이 부족하지만 가오에게는 대안이 없다. 오직 오십 원을 벌기 위해서 임시 교사가 되었던 웨이민쯔는 받기로 한 돈을 주지 않고 고향으로 떠나려 하는 가오 선생을 뒤좇는다. 가오 선생은 이탈자가 없으면 돌아와 십 원을 더 주겠다고 하며 떠난다. 이제 웨이민쯔에게 가르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이 한명이라도 줄지 않는 거였다.

열악한 환경에는 늘 변수가 많다. 두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사건이 생긴다. 한 학생은 달리기를 잘해서 도시 학교 체육 특기생으로 가고, 말썽꾸러기 장휘거는 가난 때문에 도시로 돈 벌러 갔다. 웨이민쯔는 체육 특기생은 어쩔 수 없지만 장휘거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찾으러 갈 결심을 한다. 차비가 없어서 우여곡절 끝에 도시에 간 웨이민쯔는 돈과 종이와 잉크가 다 떨어질 때까지 장휘거를 찾아 헤맨다. 간절히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 아니 죽을 만큼 혼신을 다 한 다음에야 비로소 웨이민쯔는 장휘거를 찾아서 학교로 돌아온다.

우리 반 학생들 또한 장휘거와 같은 처지였다.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에 웨이민쯔같은 선생을 만나지 못해서 나이 칠십이 된 지금에서야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한사람의 이탈자도 없게 하려는 웨이민쯔 같은 선생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나 또한 배워야 할 시기에 야생을 사느라 대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늦깎이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숱하게 그만둬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 대학 사학 년 중간고사 때는 시어머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손 받는 날이 중간고사 날이었다. 시험을 포기해야 했다. 며느리가 혼자였으니 시험 본다고 장례 식장을 비울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 때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시누이가 나섰다. “올케,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니 어서 중간고사 치고 온나.”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복을 입은 채로 밖으로 나왔다. 지금 시험을 치지 않으면 어린 날처럼 영원히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비는 장대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차를 몰았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퍼부었다. 학교에 도착을 하니 칠판에 글귀가 선명했다. “엄계옥 시모상 문상 가실 분”. 배움 앞에서 부끄러움은 잠시 접기로 했다.

우리 반 학생들 또한 오륙십 년 만에 교실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을 넘었을지 짐작이 간다. 공부란 내가 뭘 모르는지 깨닫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선한 마음을 지키는 파수병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무모하리만치 끈질기면서도 순수한 모습을 우리 교실에서 볼 때가 많아서다. 그분들과 나는 많은 시간을 에돌아서 만났다. 세월을 잔뜩 껴입은, 칠십 평생 책상 서랍 속에 간직해두었던 배우고자 하는 철통같은 의지를 매일 꺼내는 ‘소녀’들과의 만남이니 나는 그분들 앞에서만큼은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 엄계옥씨

■엄계옥씨는
·<유심> 등단
·울산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장편동화 <시리우스에서 온 손님>·산문집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 고두영씨

■고두영씨는
·개인전 9회
·한국 미술축전 국제아트페어(2019)
·서울조형아트페어(삼성동 무역센터 2019)
·여류작가초대전(현대예술관 2019)
·한국미술협회·울산미술협회 회원·울산모던아트(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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