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내가 가면 너는 떠나고 없고 / 네가 오면 나는 떠난 후이니 /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으랴 / 오가는 길 위에서 / 어쩌면 한 번 쯤 만날 법도 하다만 / 세월의 길은 / 가고 오는 길이 다른가 보다… ‘꽃무릇 피는 사연’ 중에서(김필규)

요즘 절마다 꽃무릇이 한창이다. 불타오르는 꽃무릇은 추석을 전후해 한달 정도 볼 수 있는데, 이 꽃을 보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울산 인근인 청도 운문사 입구 소나무 숲속에는 8만여 송이의 꽃무릇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고창 선운사 입구에는 10만평의 꽃무릇 군락지가 있어 관광객들이 탄성을 지른다.

▲ 꽃무릇

꽃무릇은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알뿌리가 마늘과 비슷하게 생겨 ‘돌처럼 단단한 마늘’이라는 뜻의 석산(石蒜)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꽃은 절에 주로 피어 ‘중꽃’ 혹은 ‘중무릇’으로도 불렸다.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어찌보면 스님과 꽃은 서로 맺어지기 어려운 것들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스님에게 꽃무릇은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 운명 같은 것이었을까.

꽃무릇과 비슷한 꽃으로 상사화(相思花)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꽃무릇과 상사화를 같은 꽃으로 착각한다. 심지어 행정기관에서조차 팻말에 ‘꽃무릇(상사화)’ 또는 ‘상사화(꽃무릇)’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꽃은 엄연히 다른 꽃일 뿐 아니라 꽃이 피는 시기도 차이가 있다.

상사화는 초봄에 잎이 났다가 여름이면 모두 지고 무더위가 한창인 8월에 꽃대 하나만 남아 그 꽃대 끝에 꽃을 피워올린다. 반면 꽃무릇은 가을에 잎이 올라와 겨울과 봄을 견디고 초여름이면 잎이 떨어진다. 그리고나서 추석을 전후해 꽃대 끝에 불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꽃이 핀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잎이 다 지고난 뒤 꽃대가 올라와 그 위에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진 뒤에는 다시 잎이 올라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꽃무릇과 상사화를 통칭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 두 식물은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 상사화.

잎 없이 피어도/ 외로워 하지 않고/ 흔적 없이 지는 걸/ 두려워 하지 않고/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세상에 뿌리는/ 억장 무너지는 너의 사랑 이야기/ 발길 멈추고/ 듣다가/ 읽다가/ 내 심장도 노을로 타오른다… ‘꽃무릇’ 전문(김해진)

요즘 꽃무릇 군락지로 유명한 곳은 고창 선운사, 함양 상림,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등이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