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김장은 집안의 연중 행사다. 낙엽이 다 떨어져갈 무렵 친인척들이 모여 거나하게 파티를 연다. 필자의 경우는 장모의 주도 하에 처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 김장을 한다. 배추 다듬기, 채 썰기, 마늘 빻기, 파 썰기, 양념 만들기 등 모든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 한켠에서 갓 절인 김장김치와 수육을 먹는다. 여기다 막걸리 한잔은 금상첨화.

할머니들 둘러앉아/ 이집 저집/ 하하 호호 웃음 조미료 뿌려가며/ 배추를 버무린다.// 봉이 아재 새 장가 간 일/ 진구네 삼촌 취직 못한 일/ 며느리 흉, 아들 딸 자랑/ 실몽당이 같은 할머니들 이야기/ 돌돌 말아 항아리에 담는다./ 갓 삶아낸 수육// 쭉 찢은 김치에 싸/ 만재 할아버지 오며 한 입/ 민영이 이모 가며 한 입/ 혓바닥 불났다 호호거리며/ 나도 한 입….

‘김장하는 날’ 일부 (김자미)

▲ 김장김치.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김장김치는 밥과 함께 먹는 중요한 식량이었다. 어떤 집안은 겨울이 끝나자마다 김장김치가 동이 나고 넉넉한 집은 가을까지 먹었다.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나오고 사시사철 배추가 출하되니 귀한 김치의 가치를 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김장문화는 2013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인류무형문화유산 김장은 정확하게 말하면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이다. 다시 말하면 ‘김치 담그기’와 ‘김치 나누기’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 아파트 속에서도 이웃간의 정을 김장 김치에 담아보낸다. 그게 우리 민족의 김장 DNA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느해보다 추운 겨울이 될 것 같다.

예년 같으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식구들이 김장을 하기 위해 하루 전부터 부산을 떨었지만 올해는 무척 조용하다. 코로나19로 가족들이 아예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있는 불우 이웃들까지 소외되고 있다. 이 맘 때가 되면 울산에서도 수백명의 시민들이 군데군데서 수천포기씩의 김장을 하며 웃음꽃을 피웠으나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김자미 시인의 ‘김장하는 날’은 1년 전 김장철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때만 해도 온 가족이 김장을 하면서 할머니들의 실몽당이 같은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코로나가 국민들을 꽁꽁 묶었지만 그래도 정(情)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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