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②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시민 공동체 삶·역사 담은 구시가지
황금기인 카렐 4세때부터 본격 개발
다른 시대유형들 조화로 장관 이뤄
80m의 높은 첨탑 자랑하는 틴성당
프라하의 연륜과 기품 그대로 담아
세계적 관광지로 손꼽히는 카렐교
예술·문화적 품격과 부가가치 집약

프라하성이 지배자의 공간이라면 구시가지는 시민의 공간이다. 프라하성이 차별적인 권위를 과시하는 상징물이라면 구시가지는 시민의 공동체적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역사를 제쳐놓고 도시경관과 건축만으로도 이곳은 경탄의 대상이 된다. ‘보헤미아의 장미’ ‘유럽건축의 박물관’ 등 프라하를 칭송하는 모든 표현은 구시가지에서 발원한다.

물론 이곳에 시장이 조성된 11세기부터 이와 같은 모습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국력과 도시위상의 신장에 따라 도시가 확장되고 개발된 결과다. 구시가지역의 본격적인 개발은 체코의 황금기를 열었던 위대한 군주 카렐 4세 때부터 시작된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서 그 위상에 걸맞은 도시개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도시의 연륜과 중후함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프라하는 특정시대에 박제된 중세도시와는 결이 다르다. 프라하의 매력은 오히려 넓은 시대적 간격의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발산한다. 로마네스크 시대로부터 고딕을 거쳐, 바로크와 로코코, 심지어 아르누보와 포스터 모던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주도했던 온갖 양식들이 좁은 도시 공간 안에 밀집되어 있다. 그것은 최소한 700년 이상의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축적되어온 결과물이며, 시대가 다른 유형들이 조화를 이루어 통합적인 도시경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경이롭다.

프라하가 갖는 연륜은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나타난다. 고딕 성당의 첨탑처럼 우람하게 서있는 탑문이 고딕시대라는 시간을 알려준다. 성문을 지나 북적이는 가로를 걷다보면 드디어 중앙광장에 들어선다. 구시가지 광장(Old town square), 후스전쟁이 벌어진 사건의 현장이자, 체코의 역사를 응축하여 담고 있는 곳이다. 자칫 공허하게 보일 수도 있는 거대한 사각형의 광장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건축물이다. 각양각색의 건축양식들이 보석같이 광장을 장식한다. 광장은 유럽건축의 양식을 전시하는 거대한 전시장으로 변한다.

▲ 틴성당이 우뚝 솟아 있는 프라하 구시가지는 시민의 공동체적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그 중심에는 종교 개혁가 얀 후스(Jan Hus;1369~1415)의 동상이 광장을 지키고 있다. 사제이며 카렐대학 총장이었던 얀 후스는 체코어 미사를 집전하고, 체코어 찬송가를 만들어 보급했으니, 체코의 민족주의 정체성을 일깨운 인물이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교회의 개혁을 주장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교황청이 그를 파문하고 처형하자, 분노한 추종자들이 이 광장에서 봉기했다. 이른바 후스전쟁이 발발한 역사의 현장이 된 것이다.

광장에서 슈퍼스타는 단연코 틴(Tyn)성당이다. 원래 11세기에는 작은 로마네스크 양식이었으나 14세기에 오늘날과 같은 고딕건축으로 개축되면서 구시가지의 대표선수가 된 것이다. 80m 높이의 첨탑을 갖는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하거니와 고딕의 엄숙한 품격으로 광장을 압도한다. 첨탑의 뾰족한 지붕들과 적당히 색 바랜 벽체 석재들이 프라하의 연륜과 기품을 드러내는 건축이다.

하지만 그 입구는 작은 상점가 속에 감추어져 있다. 통상적으로 광장에 면해있는 대성당의 입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무슨 까닭일까? 이 성당 또한 후스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전쟁 당시 틴성당은 후스파 추종자들이 방어거점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신구교간의 30년 전쟁에서 개혁파가 패배하면서 교회는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전환된다. 역사적 의미를 감추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내부공간이 바로크로 장식된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광장에서 틴성당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갖는 건물이 성미쿨라슈성당(St. Nicholas Church)이다. 원래 13세기 이 자리에는 고딕성당이 있었으나 18세기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시기에 바로크 성당으로 개축된 것이다. 천장 돔에는 성미쿨라세의 생애가 프레스코화로 웅장하게 그려지고, 보헤미안 글라스의 샹들리에가 호화찬란하지만, 프라하의 바로크는 외세의 지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광장의 화려함은 골즈킨스키궁(Golz Kinsky palace)의 로코코 양식에서 절정에 이른다. 외벽은 연분홍 파스텔 톤으로 화사하게 빛나고, 정교하고 호사스런 창호 장식이 18세기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로코코 양식이다. 광장은 종교개혁의 이성적 열정과 민족주의적 자각의 시대가 뒤로 물러나고 귀족적 호화와 사치로 물들어 간 것이다.

프라하의 매력은 카렐교에서 정점에 닿는다. 세계적인 명품다리로 손꼽히는 카렐교, 이 역시 카렐4세의 업적이다. 고딕식 탑문은 다리를 만나기 위한 웅장한 서곡에 해당한다. 투박한 돌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교각사이에 아치를 만들어 상판을 얹은 돌다리, 다리의 구조자체로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치교에 불과하다. 하지만 교각마다 줄지어 세운 성인들의 조각상은 다리를 고상한 미술관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다리 위에서 만나는 성인들의 동상은 신앙적 신비로움만이 아니라, 블타바강을 배경으로 예술적 감성을 뿜어낸다. 십자가를 진 예수상 앞은 성스러운 기도처가 되고,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다 순교한 얀네포무츠키 신부의 동상 앞은 비밀스런 언약을 마음속 깊이 새기려는 연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쯤 되면 강을 건너 지나가는 다리가 아니라, 머물러 즐기는 갤러리에 해당한다. 다리 위에는 각종 공연과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니 공연장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프라하의 예술적, 문화적 품격을 대표하면서 무한한 관광부가가치를 생산한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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