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뭔가 하나 툭, 떨어졌다. 그는 옆으로 쓰러진 채 잠깐 숨을 고른 후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 들판에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책의 서두를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이다.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걷는 것. 그래서 그는 그냥 걷기로만 했다. 야생 열매를 따먹고 야생 옷을 걸치고 거미줄이 보이는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잤다. 무려 2년 가까이 홈리스로. 그러자 그는 그대로 자연이 되어버렸다. 하늘과 바람과 햇빛과 풀과 꽃과 땅과 새와 벌레가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분간하고자하는 마음조차 사라졌다.그
입춘 지나고 우수도 지난 봄이다. 말만 들어도 부드럽고 향기롭고 따사로운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는 봄을 잃어버린 것 같이 생각하고 산다. 황사에 뺏긴 봄, 삭막한 세상에 뺏긴 희망. 작년이나 올해나, 겨울이나 봄이나 무에 달라질 것이 있냐고 살아온 경험들이 칭얼거려대는 날들을 걷지도 못하고 치달려간다. 차갑게만 변해감으로 마음에 꽃을 피우지 못하는 병든 시대를 산다고 아예 치부해버린 이 즈음 (에디아)의 울산 작가 진영식의 산문집을 펼친다.실로, 봄을 잃은 독자들이여! 아니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하루살이처럼
모든 문제는 생각하기 나름이고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말, 이 말은 참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어찌 귀걸이와 코걸이가 같을 수 있는가. 귀와 코는 분명 생김새도 사용목적도 다른데.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융통성 없는 생각이라고 할까.우리 사회는 지금 귀걸이와 코걸이를 구분하지 않는 포스트 모더니즘시대를 치달리고 있다. 정답 없고 한 치 눈앞을 알 수 없는 시대, 핵 개인 시대, 불안의 극치시대를 살아간다. 무서울 만큼 안일한 집단의식의 위로를 서로서로 받으면서 말이다.박영호의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노르웨이 극작가로 유명한 ‘욘 포세’이다. 그의 희곡이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랐으며 현대 연극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다. 한편 2014년도 출간된 세 편의 소설 , , >이 세계적으로 훌륭한 평을 받았고,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오르는 영광을 받아왔다.2019년도에 출간된 의 한국어 번역은 작가의 원문이 아닌 독일어판을 번역한 것으로써 작가의 독특한 문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한 사람의 생(生)과 사(死)의
살아갈수록 세상이 낯설어진다. 생각지도 상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부상하여 눈의 각도가 변하지 않고서는 더불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특히 문제가 바깥이 아니라 집안에서 일어날 때, 목숨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는 자식에게 일어날 때는 그것을 수용, 이해하는 데 초죽음적인 고통을 감내하게도 된다.(민음사)는 성소수자로서 사회문제 상에 있는 레즈비언 딸을 이해해가야 하는 엄마인 ‘나’에 대한 이야기다. 딸이 그저 소리 없이 살아주기를 바라는 엄마. 누구나 그리 여기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엄마로서 고통이
우리는 인생을 통틀어 알기란 어렵다. 어떠한 인생이든 측량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쪼개고 쪼개어 작디작은 조각으로 분리해보아도 자세히, 깊이 알 수 없고 무게는 잴 수조차 없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정재찬 교수의 (인플루엔셜)은 일곱 챕터로 나눠져 있고, 또다시 두 개의 가지로 쪼개었다. 가지 하나에도 잔가지를 여럿 달았다. 인생에 대한 시 강의 모음집으로 나온 책인데, 인생을 이리 따뜻하게 만져보는 시의 손길이 깊다. 높다.시와 더불어 저자는 영화, 소설, 드라마, 가요 등 여러 콘
만나고 만나도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따뜻한 사람이다. 손길이, 표정과 말이, 목소리가, 소리 없는 웃음이 따뜻해도 그렇게 따뜻할 수 없는 작가가 바로 울산의 배혜숙 수필가다.이분은 한 번도 요란한 적 없다. 한 번도 화려하게 보인 적도 없다. 양지바른 비탈이나 소로 모퉁이에 다소곳이 핀 풀꽃 같다. 거센 바람이 불면 뿌리에 힘을 모으고 고갤 숙인 채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순하디순한 꽃.배혜숙 작가의 다섯 번째 수필집 (연암서가)을 안는 순간 이분의 여린 몸과 마음을 와락 내 가슴에 맞대어 인사했다. 많이많이 기다렸
(룰루 밀러, 김선지 옮김, 곰출판)는 논픽션으로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의 데뷔작이다. 여러 언론 매체에서 ‘202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화제의 베스트셀러다. 과학자들의 전기(傳記)와 과학적 스토리 아래로 방대한 과학 자료와 역사도 함께 보여준다.저자 밀러는 가정의 아픔을 겪은 후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회고록을 읽게 된다. 조던은 물고기를 수집하고 연구하다가 벼락과 지진으로 모든 것이 박살나고 만다. 하지만 그 상황에 전혀 당황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다시 물고기 분류에 몰두한다. 저자
일상에서도 눈에 보이는 대로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그 느낌이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다. 내내 얼얼한 뒤통수에 손을 얹고 휘둥그레지는 눈을 굴리며 ‘설마?’라는 말만 되뇌게 된다.책 갈피갈피 펼쳐진 그림마다 그 시대상을 알고 보니 그야말로 그림 한 귀퉁이를 통해서도 그 시대의 문화와 역사까지를 알게 된다. 양파껍질 벗기듯 스토리를 벗겨나가는 재미가 좋다. 어떤 그림에서는 생명이 화폭을 찢고 나오는 것만 같다. 진흙이 묻은 채로, 피가 묻은 채로 생명이 그림 밖으로 기어 나와 독자의 상상 속에서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20세기 가장 대표시인들 중 하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불린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문학동네)을 펼친다. 1973년 9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마무리된 시집을 정현종 시인이 번역해 풀어놓았다.시는 상상력이라고 하더라. 정말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시인들은 이런 상상력에도 의미를 불어넣는 진정 언어의 마법사다. 온통 질문으로 이루어진 이 시들에 시적 답을 상상하는 재미가 장난 아니다. 시 제목이 따로 없고 일련의 번호로 한 권의 시집이 이루어졌다. 시편1 ‘왜 거대한 비행기들은/자기
동네 공터에 서커스단이 왔다. 천막이 쳐지고 무대도 세워졌다. 첫날부터 억수비가 내렸다. 천막귀퉁이는 찢겨 비바람이 안으로 몰아쳤다. 쑤셔놓은 벌집마냥 구경꾼들이 왁작거리고 땀 냄새 범벅이었지만 무대 위는 생전 처음 맛보는 공연이 벌어졌다. 따라붙은 드럼과 기타 그리고 북, 장구는 웬 말인가. 아마 줄타기, 공중그네, 원숭이 재주부리기 등에 음악을 불어넣기로 했던 모양이다. 나는 정말 두 눈이 핑글핑글했다. 딱딱 맞아떨어지도록 공중그네 낚아채는 몸짓이나, 흔들흔들 공중에 가로놓인 줄을 맨발로 건너가는 모습에 마른침이 꼴깍꼴깍, 숨이
그런 줄 알았지만 일상이, 삶이 사랑을 빼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마치 오후의 눈부신 햇볕 속 텅 빈 거미집처럼 희미해도 사랑은 있다. 문득 거미줄에 걸려보면 비로소 안다. 참 가늘고도 질긴 사랑의 힘을.정정화의 (실천문학사 펴냄)에서 사랑은 상대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옭아매이는 것이다. 책 속 주인공들의 어쩌지 못하는 모습은 거미줄에 걸린 곤충들 마냥 발버둥 치기도 하고 숙맥이 되어 잠잠하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사랑의 집을 버렸으나 정작 버리지 못해 되돌아가고, 죽고 싶었
사실 삶 자체가 전쟁 아닌가. 먹기 위해, 좀 더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 건강을 해칠 만큼 투쟁하기도 하고, 친구나 동료와 알게 모르게 벌이는 경쟁이 때론 비참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직장문제, 인간관계, 지역 간, 나라 간, 이념 간, 종교 간 등 인간이 숨 쉬는 모든 곳에 시한폭탄처럼 도사리고 있다가 욕심의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순간 발발하고 마는 것이 전쟁이다.tvN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팀이 엮은 이 책은 세계사 속 전쟁 열 편을 소개한다. 유럽의 중세시대에 있었던
부는 바람에 나무는 저항하겠지만 부러지는 가지와 낙엽을 어찌하지 못한다. 땅속에 뿌리를 박고 견디며 바람 속에 자신을 맡겨놓는다. 그렇게 바람에도, 폭우에도, 찌는 해와 칼날 시퍼런 냉기에도 적응하며 살아간다. 뒤틀리고 거칠어지면서도 새잎을 내고 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삶도 자연임을 새삼 느낀다. 누가 삶의 이기적인 바람을 멈추랴. 그저 적응해가는 것, 이것도 순리라 부른다.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핫한 작가 클라라 뒤퐁모노의 (필름 펴냄)는 2021년에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언론과
베스트셀러 책들이 자기계발서이거나 성공비결류의 책들임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 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남다르게 살아남는 비결이라고도 생각해서일 것 같다.저자 팀 페리스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에 수백만 청취자와 함께 뽑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 200명’을 출현시켰다. 최고의 혁신기업을 만든 창업가와 CEO, 슈퍼 리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예술가, 전문직 종사자, 피트니스 전문가까지 다양한 인물들이다. 그는 그들에게서 보고 들은 성
크눌프! 직업도 없이 유랑하는 그다. 그럼에도 그는 신사적이며 철학적이고 사유를 즐기며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그는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며 풍성한 삶을 누린다.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나 결코 소유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도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가시 하나를 품고 살아간다.작품 속 크눌프가 만나는 사람들의 직업은 무두장이, 선반공, 석공, 의사 등이다.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현실적인 사람들인 반면, 크눌프는 직장과 가정생활에 얽매지이 않고 본성이 원하는 대로 산다. 이런 일반 사람들과 크눌프는 서로의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근대문학가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자기 모색에 근원을 둔 자연주의문학가이기도 하다. 서른아홉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삶과 동전의 양면인 죽음에 대한 고뇌도 많았던 것 같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겐 자살이란 자기 논리에 따른 분명한 선택으로 간주하는 관점 또한 있었다.(민음사)은 다자이가 겪은 사건들을 허구화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부잣집 자식이라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꼈다든지, 고교시절에 당시 시대적 사조였던 공산주의
울산에 사는 이동고 작가와 우연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 어두운 옥상 텃밭 사진을 보여주었다. 조막만한 참외 하나가 외줄을 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당시 그는 참외사랑에 빠져 있음이 틀림없었다.저자는 (글·사진 이동고, 학이사)의 서문에서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의지처를 찾지만 자기 삶의 만족과 행복은 누가 대신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래서 그는 계곡과 숲, 혹은 식물원을 찾기 시작했다. 식물은 언제나 에너지가 되어주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어주더
삶의 목적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행복이다. 톨스토이가 58세 때인 1886년부터 1887년에 걸쳐 쓴 은 인생의 목적인 ‘행복’을 위한 기초석을 소개한다.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불행이자 무의미하다. 혼자만의 행복은 애초 불가능하며 다른 행복이 있음을 알 때 인간의 참된 생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참된 생명은 동물적 본능이 아니라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이성이란 로고스, 즉 태초의 말씀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정의하지만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결코 정의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