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여 울어 밤길 예놋다“역사도 물과 같아 변하는게 진리”청령포 소나무 숲길을 걷는 심정은 간단치만은 않다. 청령포에 흐르는 맑은 물이 어린 소년왕의 눈물인 것 같아 마음이 아린다.역사의 뒷길을 거슬러 가면 단종의 숨죽인 하루하루 긴 한숨과 눈물이 있는 곳이라서 그렇다.성군 세종대왕의 직계 맏손자인 단종을 세종대왕께서 친히 무릎위에 올려놓고 얼러주시면서 그 다음 세대 왕위를 이어받아 세세년년 조선을 이어 갈 재목이라 신하들과 대군들 앞에 친히 당부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우는데,어느덧 술잔 비워지고 님 마저 가는구나.꽃 지고 새 우는 봄날 어이할까 하노라.“저 매화분에 물을 주라”도산서원 매화나무 가지 사이로 바라보는 낙동강은 지난 겨울 비가 잦은 탓에 넉넉한 물의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수면 위로 사월의 봄빛은 윤슬이 푸르게 어리고 있었다.물이 차올라 강 건너 작은 마을은 아득한 꿈의 나라로 잠겨들게 하고 서원 앞뜰에는 매화 한 그루가 올해 햇꽃은 이미 진 뒤라 청매의 푸른 향기만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매화가지 사이로 안동댐, 물의 세계가 평화롭게 열리고 있었다.
높으락 낮으락 하며 멀기와 가깝기와모지락 동그락 하며 길기와 짜르기와평생을 이리하였으니 무슨 근심 있으리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삶사월을 건너오는 바람은 변덕스런 처녀처럼 출렁거린다. 봄이라고 먼저 꺼내 입은 얇은 치마 아래로 냉기가 서늘하다. 보리누름에 중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옛말을 실감한다. 밤새 찬바람의 끝자락에 실려 온 꽃샘에 다시 옷깃을 여미는 아침이다.어린 시절엔 양반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조선 시대엔 양인 첩의 자식인 서자(庶子)와 천인 첩의 자식인 얼자(孼子)는 양반의 자식이면서 적통이 아니었기에 가족과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듸자시는 窓(창)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만남은 언제나 헤어짐과 함께”홍랑의 입속은 달고 홍랑의 몸속은 애끓었다. 다급한 사랑의 갈증은 이별 앞에 더욱 목말랐다. 마당귀를 떠돌던 고결한 매화는 지고 둘이서 나눈 사랑의 숨결도 스러지면 봄은 가뭇없이 멀어지리라.아름다운 봄꽃이 피지만, 어느 꽃이 저 연두 빛만큼 아름다우랴. 애타는 이별 앞에 마음을 빼앗는 것은 오로지 연둣빛 고운 산버들 뿐. 어느덧 봄날은 저만치 가고 있다.홍랑은 갔지만 그녀가 남긴 절창의 시조
논밭 갈아 김을 매고 베잠방이 다임 쳐 신들 메고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버려 둘러메고 무림 산 중 들어가서 삭다리 마른 섶을 뷔거니 버히거니 지게에 짊어 지팡이 받쳐 놓고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 도슭 부시고 곰방대 톡톡 털어 입담배 피여 물고 콧노래 조오다가석양이 재 넘어 갈 제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에 전함.“농부, 풍류를 통해 삶의 여유 즐겨”봄이 오는 새벽의 적막은 못 견딜 만큼 헐겁다. 지난 겨울은 추웠고 비가 많이 내렸다.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기척도 없이 봄은 오고야
어흠, 아 그 뉘옵신고 건너 불당에 동령승이 내올시다홀 거사 홀로 자는 방안에 무엇하러 와 계십니까홀 거사님의 노감투 벗어 거는 말 곁에, 내 고깔 벗어 걸러 왔습니다 당돌한 대화체로 시적 긴장감 선사계절 깊은 산중에도 꽃이 피는 춘분이다.봄 답지 않게 강원도에는 때 늦은 봄 폭설이다. 먼 산에 눈이 내려 이곳 남쪽나라 양지바른 산 밑을 내려서면 건듯 부는 바람이 이마에 차다. 그저 하루하루 땅 딛고 하늘 이고 살아가는 일상에서 때로는 서럽고 아픈 일은 지나가는 바람이기를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며 그저 그렇게 산다.허리 휘고 가슴 답
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느냐천심 절벽의 낙락장송 내 긔로다.길 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볼 줄 있으랴 (송이:강화 기생)“천심절벽의 곧은 소나무 처럼…”여자의 아름다움이 어찌 얼굴과 웃음에만 있겠는가.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절개와 지조, 진정한 사랑에 있는 것을.붉은 꽃 흰 꽃이 봄바람에 다투어 피는 계절이 다가오지만 꽃들은 하나하나 자신만이 지니는 개성을 갖고 있다. 너무도 쉽게 만나고 너무도 가볍게 헤어지는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으로 오히려 한 송이 꽃 앞에 부끄럽다.이름 없는 농가의 담장 안에서도 꽃은 핀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巖穴)에 눈비 맞아구름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서산에 해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매화’처럼 선비의 지조를 지켜내봄의 전령사 매화소식이 여기저기 터진다. 가까이 자장매 소식이 엊그제 들리더니 먼 곳 지리산 아래 남명매도 봉오리를 틔웠다는 소식이 왔다.남명매를 만나러 가는 길은 지리산 산천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수령이 450년된 남명매가 만개하는 3월이 되면 짙은 매향에 조식 선생의 인품, 학풍의 향기를 잊지 못하는 수많은 탐매 객이 성시를 이룬다.좌 안동, 우 함양·산청이라는 말, 퇴계선생의 문하와 남명
아랫목은 식당되고 윗목은 뒷간이라물통을 책상하여 책으로 벗 삼으니봄바람 가을 비 소리 창 밖으로 지나다벽력같은 기상 호령 놀라와 일어나니네 벽만 둘러 있고 말동무 하나 없다외로운 독방 고생은 새벽마다 새롭네 시조에 담아낸 외솔 선생의 문화적 소회어느 시대에서나 선각자는 있다. 시대를 짊어지고 나갈 선각자를 그 시대, 그 사회가 요구하게 되고 그 시대를 이끌고 나갈 시대의 영웅은 태어난다.울산에서도 지금의 서동 외솔기념관 바로 위에 있는 외솔생가에서 1894년(고종31) 외솔 최현배 선생이 태어났다. 갑오경장이 일어난 해로 폐쇄적인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님 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미안코 어리석은양 나가 물어 볼까나해마다 맞이하는 봄의 축복, 봄처녀로 노래19일이 우수(雨水)다. 생명을 잉태하는 봄비는 오는 봄을 재촉한다. 누구라도 마음에 봄처녀를 간직한다고 누가 탓할 것인가. 풋풋한 청년만이 봄처녀를 기리는 것만은 아니다. 초로의 신사도, 숙녀도 마음속에 봄처녀를 간직한다고 누가 흠을 할 것이며 그 누가 빼앗을 수는 없는
혼자 걷는 길 끝에는 내가 버린 내가 있다9할은 물에 잠기고 나머지도 바람인 섬그 섬에 혼자 남겨진 널 만나러 떠난다온전한 나를 찾아 나서는 ‘포행’의 시간시인은 ‘포행’이란 제목 아래 스님들이 참선 이후 잠시 방선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순간을 포착하여 시인이 자신 아닌 자신을 살고 있지 않은가를 성찰한다.누구라도 가끔은 자신을 자신이 아닌, 남으로 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살아있으면서 살아있는 몫을 다하고 있는가를 묻는다.시인은 혼자일 때 ‘내가 버린 내’를 찾으려는 의지를 보여주
그것은 신의 나라로 열려있는 음악 같은 것불타는 들을 건너서 얼음의 산을 넘어서돌아와 가슴에 닿는 깊은 올의 현악기텅 빈 벤치에서도 시멘트 벽 속에서도수없이 잊어야 했던 가난한 이름들을이 밤에 모두 부르며 봄비는 길을 떠난다겨울밤 모든 생명들을 적시는 ‘봄비’봄비 듣는 밤이다. 한 겨울 한밤중에 봄비가 내린다. 뭘 그리 바쁠 것도 없다는 듯 조곤조곤 내린다. 얼음산을 넘어, 불타는 들을 건너서 오늘 밤 여기까지 닿았다.신의 말씀인 냥 영혼을 적셔주는 위무의 향연, 축복 같은 봄비가 내린다. 이곳 남쪽나라에선 한겨울에도 눈이 아닌 올
창 내고자 창을 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톨쩌귀 수톨쩌귀 배목걸쇠 크나 큰 장도리로 뚝딱 박아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이따금 하 답답할 제면 여닫아 볼까 하노라극에 달한 답답함을 푸념섞인 회한으로 읊어얼마나 가슴 답답하면 큰 장도리로 암톨쩌귀 수톨쩌귀 뚝딱 박아 가슴에 창을 내고자 했을까. 그것도 스르륵 어는 미닫이창이 아닌 여닫이창을 내어 확! 화들짝 열어젖히고 싶었을까.예나 이제나 사람살이 가슴 답답한 일, 없을 수는 없는 일. 초장에서 가슴에 창을 내는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하고 중장에선 창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임금을 그리는 심경, 아름답고 애절한 노래로봄밤, 배꽃 핀 뜨락에 달빛이 파도처럼 출렁일 때, 임을 멀리 둔 이의 심정은 어떠하랴.은하는 깊은 밤하늘을 가로질러 흘러가고 이런 봄밤에 누구에게나 한 가닥 봄마음을 꽃 피우지 않을 수 있으랴. 그리하여 마침내 잠 못 드는 봄밤을 꼬박 지새우고 마는 것을, 그 누구를 탓하랴.이 시조는 여인이 멀리 둔 정인(情人)을 그리는 심정과도 같고 어린 소녀가 새잎에 부는 바람에도 보송보송 솜털 이는 첫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임진왜란 한 가운데 충정으로 읊은 충무공의 ‘한산 섬’ 시조가 있다.임진년, 4월 왜적은 동남풍을 타고 바다를 건너왔고 장군은 북서풍의 거센 바람을 타고 적을 무찔렀다. 바다와 섬들은 봄바람으로 점점 가벼워지고 아침 햇살이 섬과 안개 사이로 스며들어 바다는 붉게 눈뜨고 섬은 검푸르게 일어나 앉았다.충무공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무장이었다.충무공의 ‘한산 섬’ 시조를 외면 당시, 바람 앞의 등불이었던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충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