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생민의 영수증’ 인기는
우리가 그간 무턱대고 추구해온
소비생활에 ‘그건 허세’라고
단호히 말해줬기 때문인듯
부모세대의 가난했던 기억과
현실 긍정의 태도를 고집하며
그는 세상의 거품을 일깨우고
대중의 큰 관심을 모았지만
그런 봄날도 그에겐 거품이었던듯

무엇으로 그 사람의 인생관을 알 수 있을까. 요즘처럼 자기 포장의 시대에 본인의 설명이나 주위 사람의 평판만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인기에 영합하고, 공정을 내세우면서 부정한 이득을 취하고, 청렴한 행세를 하다가 부패가 드러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살기도 한다. 나름대로 정의롭다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권력자의 의중만 살피고, 남부러워하지 않고 소신껏 산다면서도 승차감보다 하차감(차에서 내릴 때 주목받는 느낌)에 더 신경을 쓴다.

옛날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난하더라도 구애받지 않고 평안하게 살아간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노래했던 선비들 중에는 수백 명의 노비와 넓은 전답을 보유한 부자들도 있었다. 청렴하고 유유자적하는 생활이 보여주기 문구에 그친 셈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실제로 지향하는 삶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간과 돈을 어디에 쓰는지에 그 단서가 있다. 자신이 실제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활동에 가장 귀하고 한정된 자원을 쓰기 마련이다. 언제 어디에 돈을 썼는지 남아있는 기록이 바로 영수증이다. 삶의 일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에 누구라도 공개하기 부담스럽다.

정치인에게 영수증은 위험한 증거가 된다. 특히 요즘처럼 일단 잡아떼고 버티는 풍토에서는 유일한 증거라 할 영수증 발굴하기와 해석하기가 정쟁의 방법이 된다. 법인카드로 근처 커피숍을 이용한 내역이 윤리적 문제가 되고, 오래 전 호텔 커피숍 영수증이 공들인 변명을 허사로 만든다. 해외 출장에서 사용한 관광지 영수증은 공적 업무가 맞는지 논란을 빚어낸다.

일반인의 영수증은 일상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한 일기장이다. 그 중에는 무분별한 소비도 있고, 아끼다 못해 궁상맞아 보이는 일화도 있다. 어쨌건 남에게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은밀한 기록이다. 그럼에도 비록 익명이지만 작년에 많은 사람들이 팟캐스트에 자신의 경제사정과 영수증을 공개했다. ‘김생민의 영수증’이다. 김생민은 절약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면서 사연을 보낸 사람이 조금이라도 낭비한다 싶으면 가차 없이 ‘스튜핏’을 외친다.

사람들은 왜 기꺼이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며 이 프로그램에 열광했을까. 유행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어떤 메시지가 이 시대의 민감한 지점을 건드렸으리라. 혹시 이젠 감당하기 힘든 삶의 거품을 일깨웠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나라는 근면과 절약에 힘입어 산업화가 무르익자 점차 소비에 눈을 떴다. 1990년대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해외여행이 늘어났고, 2000년대에는 웰빙 바람이 불었다. 소비가 강조되다보니 남보다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능력, 즉 경제력이 삶의 목표이자 성공의 기준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경제 성장은 정체되고 빈부격차는 벌어지면서 이러한 성공은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언제까지 현재를 희생해야 할지도 회의감이 든다.

그런 가운데 작년에 ‘욜로’(네 인생은 오직 한번뿐)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던 일을 당장 하도록 부추기는 이 특이한 단어에 이끌렸다. 하지만 현재가 소중하다는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뒷감당이야 어떻든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은 막상 실행하기 어렵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래의 풍족한 소비나 당장의 멋진 이벤트가 정말 자신이 원하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삶에서 너무 대단한 것, 멋진 것, 환상적인 것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귀하고 비싼 것을 추구하느라 흔하지만 소중한 것을 잊고 지낸 것 같기도 하다. 남들과 비교하며 소비를 따라가는 모습이 실은 거품이 아닐까.

이런 느낌을 콕 짚어서 김생민은 ‘그건 허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과장 섞인 개그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리니 거부감도 없다. 명품 유혹을 못 견디는 사람, 팬 활동 등 취미생활에 심하게 빠진 사람, 무리한 대출로 빚이 늘어가는 사람에게 김생민은 ‘스튜핏’을 외치며 깊이 고민할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누군가 말려주길 바라던 사람에게는 마법의 주문이 된다. 전세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절약하는 사람, 적은 월급을 아껴서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 사람, 여자 친구와 결별 후 동전노래방에서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보통 사람에게는 ‘그뤠잇’을 날린다. 이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기죽지 않고 얼마든지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김생민이 새로운 처방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니다. 그는 부모 세대의 가난했던 기억과 현실 긍정의 태도를 물려받아 고집스럽게 지키며 살아온 듯하다. 세상이 변해 거품이 잔뜩 끼는 동안에도 그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그가 10여년 전의 불미스런 일이 드러나서 사과하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허탈하고 안타깝다. 그는 세상의 거품을 일깨우며 한 동안 큰 관심을 모았지만, 방송 활동 25년 만에 처음 만난 짧은 봄날도 역시 거품인 양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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