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화학 등 산업계 전반 확전
대일 의존도 높은 핵심부품 국산화
국내산업 체력 키우는 계기 삼아야

▲ 이은규 울산발전연구원 전략기획실장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규제로 여론이 뜨겁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서 시작된 불씨는 자동차, 정밀화학 등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조치철회와 협상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는 완강하다.

급기야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맥주, 화장품, 자동차 등 제품에서 관광 등 서비스분야에 이르기까지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2020년 도쿄올림픽’ 불참을 요구하는 청원도 등장했다. 과거 대일 불매운동의 역사를 들어 일시적일 것이라는 분석과 이번에는 다르다는 의견이 팽배한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매운동을 뜻하는 보이콧은 ‘찰스 보이콧(Charles Boycott)’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일랜드 지주의 재산관리인이었던 그는 강압적 태도로 인해 아일랜드토지연맹과 갈등을 벌였다. 대기근이 들어 소작료를 체납한 소작인들을 추방하려 하자 토지연맹은 아무도 그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조차 구하기 힘들어진 보이콧은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었고 결국 아일랜드를 떠나야만 했다. 이후 ‘보이콧’이라는 단어는 ‘어떤 행위에 조직적·집단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세계 역사에서 보이콧 사례는 적지 않다. 미국 독립혁명의 단초가 된 영국제품 불매운동과 보스턴 차 사건, 인도의 스와데시 운동, 일제 강점기 물산장려운동 등이 있다. 또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관련해 미국과 소련이 상대국에서 치러진 올림픽을 서로 보이콧한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보이콧 대상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까지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본의 명분없는 수출규제는 자유무역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을 바탕으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자유무역의 혜택은 1776년 아담스미스 이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분업의 원리로 설명된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간에도 잘하는 분야가 있다. 나라마다 강점이 있는 분야에 집중하게 되면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 이른바 국제분업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국제분업을 바탕으로 교역을 하게 되면 시장이 확대되고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반면 보호무역주의는 일반적으로 자원배분의 비효율성과 무역 갈등을 야기한다. 이에 따라 국제경제 성장 역시 둔화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최근 일본 현지에서도 이번 수출규제 조치가 일본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양국의 제조업 분야가 각자 특화된 분야를 중심으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한국은 반도체 생산에 강점이 있는 반면 일본기업은 설계, 장비, 소재 등 연관 산업에 강점이 있다. 그동안 반도체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이 양대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오래된 국제분업의 결과라는 것이다. 양국간의 국제공조 실패는 푸젠진화, 칭화유니 등 국영반도체 기업을 앞세워 ‘반도체 굴기’를 노려온 중국에게 뜻밖의 호재가 될 것이다.

울산에서도 일부 유통업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기초단체에서도 일본 출장을 취소하는 등 반일여론이 확산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의 일방적인 경제보복에 분노하는 국민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민들의 분노가 불매운동으로 표출된 것도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흐르는 것은 막아야 한다. 아베정권도 당장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고 양국간 신뢰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도 대일 의존도가 높은 핵심부품 국산화에 추경 편성을 검토하는 등 대응방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모쪼록 이번 사태가 부품·소재·장비 등 국내산업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기초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경제보복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당당하게 국제분업과 협력을 추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은규 울산발전연구원 전략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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