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어머니(안재용作) - 어머니는 생명이고 환희이고, 또한 서러움이고 안타까움이다. 그저 가만히 멈춰 있는 고요한 얼굴에서도 잔칫날의 음식 냄새가 배어나고, 오일장의 왁자지껄한 흥정소리가 들린다. 코스모스 같고 해바라기 같은 여자의 꿈도 어딘가에서 아련히 스며나온다.

햇감자~타박이 감자 있심데이~”

활기가 넘치는 오일장이다. 청 매실을 찾아 시장 골목을 돌아본다. 유월의 햇살아래 야물어진 채소들이 장터 곳곳에 펼쳐져 있다. 씨알 굵은 감자가 담긴 소쿠리 옆에는, 이제 갓 눈을 뜬 병아리들이 연신 ‘삐약~삐약~’소리를 내며 종이상자에 담겨 있다.

그 옆을 돌아 소매상들이 자리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어귀 왼쪽에는 볕에 그을려 거무레한 얼굴을 한 남자가 파란 들통에서 미꾸라지를 건져 내고 있다. 까만 봉지에 담으려 하자 “아이고~ 몇 마리 더 넣어 주게이. 어이~” 앞에 선 할머니가 흥정을 한다. 미꾸라지들은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나 한 듯 서로의 몸 아래로 파고들어 끈적끈적한 진을 만들고 있다. “아이고~ 할매요. 그라면 나는 남는 게 없심더”라면서도 한 움큼을 더 건져 봉지에 담아 준다. 미꾸라지 봉지를 들고 앞서가는 할머니는 살구 색 꽃무늬 셔츠에 남색 주름치마를 입고 있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허리를 제쳐 걸어가는 모습이 지난 세월을 가늠케 한다. 할머니 곁을 지나다 보니, 치마 앞자락을 허리고무줄에 당겨 넣어, 인견으로 만든 하얀 속바지가 그대로 보인다.

자연산~ 자연산 미꾸라지 한 그릇 만원~”

엄마는 종갓집 종부였다. 많은 친척들로 북적이는 명절이면 어김없이 가마솥 가득 추어탕을 끓였다. 별 반찬 없이 다진 마늘, 청홍고추 다진 것 그리고 산초가루만 상에 올려도 푸짐한 상차림이 되었다. 마당에 걸린 가마솥 옆에 긴 국자를 든 채 서 있던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명절이라고 챙겨 입은 치마 앞자락은 허리춤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허리를 숙여 간을 보기엔 긴치마가 거추장스러웠다. 치맛자락은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낼 사이도 없이 된장, 간장, 마늘 등 양념냄새가 배어 들어갔다.

며느리 셋에게 일을 넘기고 큰 손님 치를 일이 없어졌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치마 앞자락을 허리 고무줄 속에 끼워 넣었다. 굽어진 허리 때문인지 줄어든 키 때문인지 그것이 편하다고 했다.

“향긋한 두릅~, 엉게잎~, 봄나물 사가이소”

한동안 몸이 안 좋아져 거동이 불편할 때였다. 늘 집에만 있던 엄마를 모시고 바람도 쐬고 좋아하는 쌈밥도 사 드리려고 친정으로 갔다. 추운 겨울을 갓 지나고 싹을 돋운 향긋한 두릅과 연한 엉게잎의 쌉싸름한 맛은 떨어진 입맛을 돋운다며 좋아했다. 전화를 미리 넣었던 터라 엄마는 외출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자잘한 꽃이 그려진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일으켜 세우면서 스치는 엄마의 치마 자락에서 냄새가 났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볼일을 보러 갈 때도 앞 춤에 자주 끼워 넣다보니 치맛자락에 여러 냄새가 밴 듯 했다.

“엄마~ 치마에서 냄새가 난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가자.”

아무 생각 없이 서두르며 건넨 말에 엄마는 당황해 했다.

“뭐라꼬! 내인테 냄새가 나나? 아이고~내가 할마이 냄새가 날까봐 일심정심으로 비누로 씻는데도 냄새가 나는갑따….”

자못 근심스런 얼굴이었다. 치마만 갈아입으면 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그날의 외출은 썩 유쾌하지 못했다. 이미 뱉은 말이라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엄마는 외출을 꺼리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냄새가 안 난다고 여러 번 말을 해도 불안해했다. 그날 이후, 엄마와의 외출은 대중목욕탕이 첫 코스가 되었다. 목욕탕에 앉은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다. 엄마는 어떤 비바람도 거뜬히 막아주고 여덟 자식이 언제나 기대어도 되는 든든한 기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앞에 앉은 엄마의 몸은 얇아져 쪼그라들었고 틀니를 뺀 입매는 합죽했다. 누군가 곁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기울어져버릴 것 같았다. 그 엄마는 뜨듯한 물에 적신 수건을 접어 머리위에 올려 두고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엄마는 찰랑찰랑 흔들리는 치마를 입고, 갖은 양념 냄새 배어 들어오는 고된 삶 속에서도 코스모스 같은 여자를 꿈꾸었으리라. 그것도 모르고 치마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으니 얼마나 철없는 딸이었던가.

약많이 안치고 키운 청 매실 사서 효소 담그소~.”

골목 끝에 청 매실이 담긴 초록색 그물망이 보인다. 주인은 잘 키운 매실이 마치 출세한 자식이나 된 듯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한 망에 만원, 두 망 같이 하면 만 칠천 원에 주겠다며 가져가란다. 이만하면 그저 주는 것인데 망설일 게 뭐 있냐며 내 시장 수레 안에 밀어 담는다. 중간 중간에 끝이 노랗게 익은 매실도 섞여 있어 제대로 된 효소가 될 듯하다. 냄새 또한 싱그럽다.

잘 씻어 말린 매실과 설탕을 한 켜씩 번갈아 항아리에 담는다. 그 속에서 서너 달 숙성되어 갈 것이다. 매실은 자신이 가진 진액을 아낌없이 빼주고는 쪼글쪼글 작아진 몸체를 드러낼 것이다. 대중목욕탕에서 주름 가득한 얼굴로 웃어주던 엄마처럼….

※‘거리는 장날이다’는 제목은 백석 시인의 글에서 빌려옴.

▲ 박가화씨

■박가화씨는
·울산 출생 제14회 울산 공단문학 수필 우수상
·‘현대 수필’ 신인상 등단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2대 회장
·울산교육청 ‘사람책 도서관’ 휴먼 책

 

 

 

 

▲ 안재용씨

■안재용씨는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청도 운문댐 설치작업
·울산현대H갤러리, 대구대백 갤러리 초대전
·울산미술협회 조소분과 이사
·울산사생회 운영위원, 울산미사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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