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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윗사람, 아랫사람 둘 다 힘든 이유

기사승인 2020.08.04  20: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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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

한국은 독특한 의사소통 문화가 있다. 욕구가 있으면서도 직접 드러내지 않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며 함축적으로 말한다. 돈을 좋아하면서 ‘저는 돈 별로 안 좋아해요’, 외모를 신경 쓰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죠’, 빨리 오라고 재촉하려면 나쁜 사람으로 몰릴까봐 ‘천천히 오면 돼’라고 표현한다.

말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속이 상한다. 그러나 들은 사람은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제대로 했어야지’하고 불평한다. 이런 일이 한국 사회에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본심과 표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욕구를 표현할 때 본심을 드러내는 걸 매우 꺼리며 체면을 중요시한다. 학술적 용어로 ‘고맥락 문화’라고 하는데, 진짜 의도가 뭔지 간파하는 능력이 중요한 사회를 뜻한다. 이러한 고맥락 문화의 장점은 짧은 의사소통으로 인한 경제성과 편의성이다. 불편한 말을 안 꺼내도 상대방이 알아서 해결해주니 편하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꿰뚫어 봐야하니 머리를 더 굴려야 한다. 혹시 모를 불이익에 대비해야 하며, 주변 눈치까지 같이 살핀다. 상대방의 태도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며 숨겨진 의미와 욕구를 단박에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합의금 협상을 예로 들어보자.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알아서 성의껏 준비해달라’이다. 막상 합의금을 받으면 성의가 얼마인지 세어보다가 액수가 마음에 안들면 봉투를 집어던지며 ‘이게 성의야?’하고 고함치고, 가해자 측 또한 화를 내며 ‘그럼 얼마를 원하는데?’하고 언성 높인다. 사건 수습을 의논하는 위원회에서 “저희가 원하는 건 재발방지 딱 하나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재발방지 위주의 조치사항을 결정하면 다음 날 “왜 저놈을 약하게 처벌합니까? 정말 당신들 그렇게 안 봤는데!”라는 거센 항의가 밀어닥친다.

한국인이 법원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법 세계는 감정, 맥락, 분위기 보다는 증거, 숫자, 구체적인 자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명확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원, 경찰, 학교폭력위원회, 학생선도위원회, 시험, 장학재단, 병원 등은 고맥락이 아니라 저맥락 문화이기 때문에 ‘내 마음 알지?’ 했다가는 큰일 난다. 기준이 분명해야 하고, 형량과 액수 등 모든 숫자가 정확해야 한다.

윗사람이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심전심 문화권에서 자랐기 때문에 욕구 표현을 어색해한다. 반대로 아랫사람이 힘든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원하는 것을 표출할 줄은 아는데 윗사람은 나를 속물 취급한다. 방침을 제대로 안 주면서 마음을 알아맞히라는 식이면 더 힘들다. 시대가 바뀌었다. 누구나 돈을 좋아하며 이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못 믿으면 ‘쟤는 돈만 밝혀’ 식으로 깎아내리기 마련이다. 상대방 욕구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 욕구 또한 쉽게 표현하지 못 한다. 온갖 신경전이 난무하고 피로가 많아지며 생산성 또한 떨어진다. 윗사람, 아랫사람 모두 힘들어하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첫번째 방법은 욕구 표현과 존중이다. 그러려면 공동체 집단의 신뢰를 높여야하는데 하루 아침에 다 되지는 않으니 이번 휴가 기간에라도 상대방의 욕구 하나씩만 먼저 존중해보는건 어떨까?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

경상일보, KSILBO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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