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소운 전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석남사 일대를 둘러보다 보면 소나무에 괴이한 모습의 V자 상흔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전쟁에 필요한 연료를 보충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칼과 톱을 이용하여 나무의 밑동을 벗겨내 송진을 채취했던 흔적이다. 나무에 새겨진 V자 모양은 경관상 흉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 민중이 겪었던 아픈 역사와 관련되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화자산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역사로 송진을 정제(精製)하는 데 사용되었던 송진독을 들 수 있다. 송진독은 관솔(송진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에 열을 가하는 방식을 활용하여 송탄유(松炭油)를 추출하는 데 사용되었다. 소나무에 남은 상흔보다도 더 가혹한 방법으로 수탈되었기에 민중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옹기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송진독 가운데는 실제 사용했던 흔적으로 기물 안쪽에 그을음이 남아있는 것도 있다.

소나무에 깊이 홈을 판 후 생송진을 추출하는 방법은 채취통을 설치하여 송진을 모으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었다. 송진 추출 시기가 일정해서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수탈 시간이 점차 길어짐에 따라 마을 일대는 물론 깊은 산 속의 소나무까지 모두 수탈당하게 되면서 뿌리관솔을 캐는 방식으로 강요받기 시작했다.

▲ 송진독.

관솔 캐기는 계절에 상관없이 진행된데다 땅속에 묻힌 것을 찾아야만 하는 고난한 작업이었다. 게다가 관솔을 캐도 포대에 담거나 지게에 실어 마을까지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이중삼중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강제 동원되었으므로 극심한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우리가 지난 과거의 역사로 마주하고 있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현재로 보상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과거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문소운 전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