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가덕도신공항특별법 ‘닥통’
민주주의 기본 원칙 3권 분립 훼손
행정부·국민여론 수렴 신중 결정을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고 인정받는 우리나라에서 3권 분립에 대한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의회 다수당인 집권 여당의 입법 독주 때문이다. 몇 달 전에 ‘부동산 관련법’을 ‘번갯불에 콩 볶듯이’ 통과시킨 집권여당이 이번에는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그야말로 번개 같이 통과시켰다. 운동경기에서 회자되던 ‘닥공’(닥치고 공격)이 우리나라 입법부에도 등장했다. 가히 ‘닥통’(닥치고 통과)이라고 부를 만하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물론이고, 법무부, 환경부 등 행정부의 관련 부처들이 반대 또는 보완의견을 제시했지만 집권 여당의 ‘닥통’에는 모두 무기력하게 나가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여당 대표는 행정부에 일갈했다. “국회가 법을 만들면 행정부는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과연 그럴까? 형식논리로 볼 때에는 국민의 대표인 의회에서 결정하면 행정부는 그에 따르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결정과정과 내용에 중대한 흠결이 있을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서구에서 의회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군주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관료들은 이를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 통상적인 전제(專制) 정부의 운영 모습이다. 이후 국왕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시민들이 대표를 구성하면서 의회가 등장하였고, 입법권과 행정권이 분리됐다. 주지하다시피 로크(Locke)와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주장한 권력분립 이론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전횡을 방지하여 국민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후 행정·입법·사법의 3권 분립주의는 보편적인 헌법 원칙으로 발전하였으며, 물론 우리 헌법도 3권 분립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3권 분립주의라는 헌법정신에 비추어 볼 때 여당대표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국회가 결정하면 행정부가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 국왕이 결정하면 집행관료들이 무조건 복종해야 했던 과거 전제주의 체제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비록 선거에서 승리하여 다수당이 되었지만 항상 국민과 야당의 의견을 수렴하고, 입법이 미치는 경제적·사회적 영향을 충분히 감안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이 민주의회의 기본 책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선거를 겨냥한 정치적인 이유로 졸속적인 입법을 감행하면서 헌법으로 보장된 행정부의 합리적인 견제행위를 부정하는 것은 3권 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국가에서 수용되기 어렵다. 만일 행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하지 못하면 지금처럼 폭주하는 입법부의 ‘닥통’은 누가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 또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자유의 훼손과 국가적 손실은 누가 지켜낼 수 있겠는가.

가덕도신공항특별법 만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국제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법률들이 충분한 논의 없이 ‘닥통’되고 있다. 국회 자료에 의하면 21대 국회 출범 이후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 중 민주당에서 발의한 것이 무려 90%에 육박하고 있다. 이 수치만 보아도 여당의 입법 폭주가 확연히 드러난다. 법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 영향은 생각보다 크고 오래간다. 법이 잘못 만들어지면 그만큼 국민들의 고통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어설픈 법안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 국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정치논리에 좌우되는 국회의 과잉·졸속입법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갖춘 행정부 관료들밖에 없다. 이들 마저 정치논리에 굴복시키면 그 후유증은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집권여당은 ‘행정부는 무조건 따라오라’는 오만한 자세를 버리고, 그 어느 기관보다 경험과 정보가 풍부한 행정부의 의견을 수렴하여 입법에 반영하기 바란다. 공항을 신설하려면 국토교통부 의견을 들어야 하고, 추경을 편성하려면 기획재정부에 의견을 묻는 것이 상식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작 부울경에서도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응답이 과반이 넘는다. 국민들은 ‘닥통’보다는 제대로 된 법률을 원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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