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음악연주를 할 때 합창이나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무대에서 지휘봉을 사용하여 많은 단원들과 소통하며 음악을 표현한다. 지휘봉은 인류 음악의 시작과 함께 사용되진 않았다. 많은 사람과 함께 연주하는 합창이 발전하면서 드디어 지휘자의 역할이 필요하게 됐고 지휘의 역사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합창단 중 노래를 잘하는 칸토르(Cantor)가 눈짓이나 고개를 저으며 시작 하는 신호를 보내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런 형태의 연주는 현악 사중주나 소규모 앙상블에서 리더가 활을 크게 움직이며 시작을 알리고 끝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몸짓을 하며 리드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다가 합창단의 규모가 점점 커지며 많은 사람이 칸토르를 다 볼 수 없게 되자 큰 지팡이를 사용하여 바닥을 쿵쿵 소리가 나도록 찧어서 그 소리와 큰 지팡이의 움직임을 보고 동시에 연주를 하게 됐다. 이러한 형태를 최초로 사용한 지휘자가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이다.

이탈리아 태생인 륄리는 프랑스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무용수(Ballerino)로 활동하며 프랑스 궁정음악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의 신임을 받았으며 왕과 함께 발레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잘 나가는 륄리가 무대에서 칸토르의 지팡이(Stick of Cantor)로 무대바닥을 힘껏 내려치며 음악을 지휘하는 방법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륄리는 어느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기 발등을 찧어서 심한 상처가 나게 되었고 발가락이 괴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왕실 의사는 괴사된 발가락을 잘라야 한다고 권했으나 륄리는 왕과 함께 발레를 하는 발레리노인데 발가락을 자르면 발레를 할 수 없게 된다며 의사의 권유를 듣지 않았다. 괴사된 상처가 급속도로 악화됐으나 륄리는 끝내 수술을 거부했다. 권세 좋고 화려했던 궁정 음악가 자리를 더 이상 지키지 못하고 나이 55세에 사망한 륄리는 무대에서 지휘하다가 지휘봉에 자기 발등을 찧어 죽게된 지휘자로 기록됐다.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추천음악=Te Deum, LWV 55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